• 최종편집 2024-04-27(토)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기고

실시간뉴스

실시간 기고 기사

  • 공무원 퇴출바람에 대한 찬반 논리||■정영권
    ■정영권의 세상 엿보기 울산발 무능 공무원퇴출 바람이 서울을 거쳐 지방 공무원 사회는 물론 한국은행, 국립대학, 심지어 중앙정부까지 글자 그대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한 찬반 양론이 거세게 일고 있는데, 아무리 들여다 봐도 찬성의 논거는 참으로 다양 하고 공감이 가지만, 반대입장의 논리는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을 선별적으로 정리하는 수단이라는 주장 외에는 딱히 관심을 끌만한 내용은 없는 것 같다. 필자는 이미 본 난을 통해 잘사는 서산을 위해서라도 이 제도의 도입이 시급함을 강조한 바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경쟁을 통한 작고 효율적인 정부 구현’을 목표로 무능, 태만 공무원 개혁을 오래전 부터 추진하여 왔다. 미국은1992년부터 국가성과평가위원회를 구성해 정부 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98년까지 연방공무원 35만 명을 줄이며 공무원 조직에 민간의 경영혁신기법을 도입했다. 일본은 2001년 1월 정부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22개 부처를 12개로 줄였다. 공무원 수도 10년 동안 25%를 감축하기로 했다. 공무원 인사제도도 개혁해 연공서열을 철폐하고 민간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반면 우리의 경우는 어떠했나. 역대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작은 정부’에 대한 약속은 빠짐없이 등장하던 단골손님 이었지만 어느 정부에서도 ‘효율적이고 작은 정부’에 관한 약속을 지킨 바가 없다. 해방 이후 공무원 조직은 고시라는 획일적인 채용방식을 통하여 신분의 척도인 계급을 부여하고 일정한 경력을 쌓으면 계급을 상승시키면서 신분을 보장해 왔던 기존의 인사제도를 통하여 양적 증식만을 해온 셈이다. 조직내부에서부터 스스로의 질적성장을 도모 하여 왔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말 그대로 이상론일 뿐이고, 우리 사회 그 어느 분야도 경쟁원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조직은 있을 수 없다는 원칙에서 바라 볼 때, 지금이라도 그러한 시도가 이루어 지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평가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공무원퇴출은 국민의 공감대에 기반하여 확산되어 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퇴출 당사자 및 일부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하기에 당사자 모두가 공감 할 수 있는 체계적인 평가기준에 근거하여 보다 과감하게 이루어 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무원 평가에 관한 기존의 근무평점, 실적가점제, 기타 다면평가 및 승진심사위원회를 통한 자체 시스템에 근거하는 합리적 기준을 제시하는 한편 여론몰이용 인기몰이용 일회성 이벤트라는 비난을 종식 시키기 위하여는 상대평가를 통한 몇%식의 할당제가 아니라 기존 공무원 검증시스템과 병행, 보완하는 절대평가를 통하여 0%, 3%, 30%도 될 수 있도록 합리적 기준을 제시 하여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조직운영의 기본은 기강확립에서 시작된다. 다만 현행 공무원퇴출이 기강확립을 조직체질 개선의 수단이어야지 목적이 되는 것을 경계 하여야 될 것이다. 공무원 이란 지위는 항상 반대에 직면하여야하고 항상 검증 받아야 하는 자리이어야 한다. 하위직은 물론 이거니와 상위직의 책임은 더욱 크고 무거울수밖에 없다. 현재 공무원 퇴출은 대부분 방식측면에서 하향식평가에 기반하고 있고, 그 기준도 모호 하여 당사자의 반발에 직면하여 있다, 가장 곤혹스런 문제 중 하나는 무능한 공무원이 하위직급에만 있다는 가정은 비 합리적이다. 하위직 퇴출 이후에 반드시 이루어 져야 하는 것이 상위직 무능 공무원에 대한 퇴출이다. 금번 하위직 공무원퇴출 이후에 살아남은 공무원들의 평가를 통한 상위직 무능 공무원 역시 퇴출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하여 공무원 조직은 퇴출당사자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일부 줄서기 풍토에도 경종을 울려 조직의 실질적인 체질 개선을 도모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의 맑음이 계속해서 유지 되지 않겠는가? 무능공무원 퇴출이 목적이 작고 효율적인 조직을 지향 하는 것이라면 퇴출 이후에 반드시 이루어 져야 하는 것이 바로 사기진작이다. 효율성이란 작다고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작고 강한 조직을 위해서는 조직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줄 수 있는 사기 진작은 필수다. 공무원의 신분보장이라는 고리타분한 명목상의 보장이 아닌 공무원에 대한 실질적인 처우개선 및 과감한 인센티브제 도입과 같은 다양한 시도를 통하여 일하는 조직으로 변모 시켜 나아가 목민(牧民)이라는 목표를 지향하도록 독려 해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2007-04-01
  • ■명예기자 코너=‘아름다운 농촌을 위하여’||김교성
    농촌을 살려야 한다. 비록 농민의 수가 줄더라도 농촌은 잘 지켜야 한다. 농촌은 우리의 자연과 문화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길게 보자면, 결국 ‘농자천하지대본’의 세상이 다시 오게 될 것이다. 공업의 바탕이 되는 자원이 머지 않아 고갈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명적 시간의 관점에서 현재의 풍요에 드리워진 짙은 그늘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가 현재의 풍요를 위해 세상을 마구 파괴하고 훼손한다면 우리의 후손은 그 피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말 것이다. 한 세대를 넘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농촌의 중요성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농촌이 이처럼 미래적 가치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이 줄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농민의 수는 전국적으로 300만명이 넘는다. 농민과 그 가족에게 농촌은 생존의 터전이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도시민에게도 농촌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농촌은 도시민에게 온갖 먹을거리를 공급해주며, 또한 맑은 공기와 물을 제공해 주고 나아가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시공간을 마련해준다. 농촌은 우리의 건강한 삶을 위해 반드시 잘 지켜야 하는 곳이다. 농촌은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무섭게 변했다. 밥 한 그릇이 껌 한 통보다도 싼 세상이 되더니, 이제는 심지어 껌 한 개보다도 못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런 세상에서 곳곳의 농촌이 난개발되어 문전옥답이 모텔이며 펜션 등으로 마구 바뀌는 것은 그저 당연할 뿐일 것이다. 어느덧 농촌의 가치를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습고 잘못된 것처럼 여겨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농촌은 아주 사라져 버려야 하는가? 농촌을 없애고 한미FTA를 체결하는 것이 과연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의 길인가? 답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가 그랬듯이 우리도 이 땅에서 대대손손 살아가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이 땅을 지켜야 하고,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농촌을 지켜야 한다. 저급하고 파괴적인 이윤의 논리에 의해 대대손손 지켜져야 할 농촌이 파괴되고 있는 이 때에 농촌을 잘 지키는 것은 국가의 중대한 존재이유가 아닐 수 없다. 농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방기하는 국가는 그 존재이유를 스스로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농촌을 지키는 것은 농민만의 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한 국가의 중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다행히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한 소식들을 접하면서 순간이나마 새롭게 희망이 솟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희망보다는 불안이 여전히 더 크다. 그 까닭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 국가 차원의 노력이 정치적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희망을 일구는 노력이 극히 제한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자발적인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노력과 이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제대로 결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름다운 농촌을 위해….
    • 오피니언
    • 기고
    2007-04-01
  • 적어도 시장이 되고 싶다면
    요즘 거리에 나가면 온통 시장 재선거 이야기다. 후보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好惡)에서부터 향후 정치전망까지 듣기만 해도 넘치고도 남을 지경이다. 최근 들어 한나라당 공천과정에 누구 누구는 안된다며 칼을 들이대자 마치 불에 덴 것처럼 공천판도가 시끄러워지고있다. 이렇듯 서산지역 인사들이 시장 재선거에 집착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서산의 정치력 한계를 거론할 수밖에 없다. 부족한 인구에 부족한 자원은 정치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더욱이 권력의 가장자리에 있어본 경험도 없다. 선배정치인들로부터 별다른 학습을 받을 기회도 없었다. 세력은 없고 권력으로부터는 먼 이런 경험들이 별다른 반성없이 계속되다보니 서산 정치권은 시대의 흐름을 놓치기 일쑤였다.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서산 정치권 인사들은 그 알량한 기득권에 안주하는 경향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것은 여야를 떠나 마찬가지였다. 이럴 때 가장 편한 방법은 사람 많은 마차에 슬그머니 올라타는 것 뿐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는 첫 장면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맥베스 장군에게 마녀들이 나타나 왕이 될 것이라는 계시를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충성을 다해 모시는 왕이 있음에도 불구, 맥베스는 흔들리고 결국 왕을 살해한 뒤 스스로 왕위에 오른다. 맥베스의 파국으로 끝나는 이 희곡은 권력에 대한 유혹이 얼마나 달콤하고 잔인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그 유혹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최근 들어 아마 귀엣말로 살며시 다가와 그 대세론의 유혹을 속삭일 지 모른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현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다. 대세에 순응하는 것이 허물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앞 뒤가 바뀌었다. 어떤 결정에 앞서 좀 더 투철한 역사인식과 사회적인 의미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시장에 뜻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시대적 상황, 앞으로 전개될 미래들에 대해 깊이있는 토론과 고민이 필요하다.
    • 오피니언
    • 기고
    2007-03-26
  • ■옥녀봉■ 변즉생 불변즉사||도신 스님
    변하면 살고 변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말은 빠른 속도로 변화를 좇아야 생존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급변하는 현실에 있어 절대명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의 속도가 변화의 속도를 결정한다. IT로 대변되는 최첨단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세계를 더욱 좁히고 있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경제인과 과학자, 기술자들이 IT 강국으로 부상한 우리나라의 디지털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다. 이렇게 앞선 문물을 부단히 받아들이려는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를 갖느냐 못 갖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흥망은 결정되어졌다. 조선시대 말기에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우리나라의 발전을 느리게 한 원인이 되었다. 우리 서산 역시 높은 산에 둘러싸여 옛날부터 자유롭게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외부의 문물을 바로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았다. 2001년 서해안고속도로 개통 이후 서산은 급속 발전의 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외형적 기회와 함께 우리의 의식이 열린 마음으로 변화할 수 있다면 우리 서산은 엄청난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때 우리가 고도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공직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국민들의 새마을운동에의 동참이 있었다. 우리보다 못한 아시아의 나라들은 이제 새마을운동을 모범 사례로 배워가고 있다. 새마을운동의 핵은 정신개혁운동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의식의 변화는 곧 우리에게 고도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제2의 새마을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좀더 나은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제일 먼저 발전적인 방향으로의 의식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로 인해 행동이, 습관이, 운명이 차례대로 바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서산시장 재선거가 치러진다. 우리는 새로운 시장을 선택해야 할 권리가 있고 그 시장은 우리에게 보다 나은 삶의 질 향상에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 모두는 변화를 갈망하고 혁신에 앞장서는 그런 시장을 원하고 있다. 시장의 의지는 서산시 공직의 변화를 유도하고 그것을 곧 사회의 변화로 확대해나간다. 어떤 조직이든 지도자가 중요하다.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조직이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많은 경험을 통해 지켜봤다. 21세기 정보화사회의 변화 속도와 공직사회의 경직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 제일주의와 책임경영이란 기업의 경영마인드를 접목할 수 있다면 공직사회는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고 이 변화는 우리에게 희망찬 미래로 다가설 것으로 확신한다. 이제 우리는 변화할 각오를 현실로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서산에는 유능하고 실력 있는 그리고 순수한 공직자들이 많이 있다. 이들을 신비람 나게 일 할 수 있도록 하는 지휘자가 들어와 열심히 지휘할 때 우리는 춤추게 될 것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하나가 되고 우리도 모르게 살기 좋은 서산시로 변해 갈 것이다. 오는 4월 25일 치러야하는 서산시장 재선거에서는 그래서 변화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그런 지도자가 선출되어져야 한다.
    • 오피니언
    • 기고
    2007-03-24
  • “온석동 어머니들을 칭찬 드립니다”||■독자의 편지■ 김현주
    이글을 읽게 되는 많은분들께! 여러분의 칭찬소리가 한데 모아져 하늘에서 온석동 어머님들께 상을 내리셨음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저는 지난 2006년에 센터에서 주관하는 문해교육 1기생으로 지금은 온석동에서 여러 어머님들(할머님)께 우리말과 한글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는 문해강사입니다. 서산타임즈에서도 몇 차례 고령이신 어머님들께서 뒤늦게 연필을 잡고 공부하시는 모습을 접한적이 있을 겁니다. 온석동에서 한글공부를 시작한지 4개월이 조금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시작을 같이 하신 어머님들 모두모두 한분도 빠지지 않으시고 자리를 메워 주시고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처음으로 동사무소에 일을 보러 갔다가 직접 이름을 쓰고 나오셨다며 연신 “선생님 고맙습니다”를 외쳐주시는 최순할머니, “낫 놓고 기역자도 몰라서 선생님 속만 태우니 정말로 죄송하다”며 머릴 조아리시는 정정순할머님, “아이구 난 못혀”하면서도 숙제를 내드리면 끝까지 다해 오시는 유부임할머님, 게다가 글씨체도 너무 예쁘신데다 실력이 있으시면서도 겸손까지 갖추신 이영순할머니, 그리고 유용덕할머니 … 등, 모두 모두 칭찬해 드리고 싶은 어르신들입니다. 우리들의 어머니이자 한 시대를 살아오신 그 분들께 상이라도 내려 드리고 싶지만 강사로서 더 이상 해드릴게 없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더욱 마음이 아픈것은 경로당의 여성전용 방이 너무도 협소하여 네모진 상을 이리저리 짜맞추어 펼쳐놓으면 다리도 제대로 뻗을수 없어 수업이 끝나면 서로 다리를 주무르시는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 지식 전달 외에 해드릴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강사로서 늘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행스럽게도 경로당 2층에 공간이 있어 사용 허락까지 받았습니다만 책걸상이 문젭니다. 현재 놓여져 있는 책걸상으로는 무언가를 올려놓고 쓸수 있는 크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된 우리시의 시책으로 보다 많은 어르신들께서 젊어서 못다한 공부를 늦게라도 할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이면의 이러한 초라한 학습환경은 우리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요. 우리 지역 모든 어르신들이 더 낳은 환경에서 학습할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울러 서산지역 곳곳에서 어르신들 문해교육에 힘쓰고 있는 동료 문해강사님들, 하나라도 더 배우려 빠지지 않고 출석하시는 우리 어머님들을 서산타임즈를 통해 모두 모두 칭찬해 드립니다.
    • 오피니언
    • 기고
    2007-03-24
  • 【경제인 칼럼】4월을 기다리며||이영주 (주)MGS 전무
    봄바람이 상쾌하여 들로 바다로 마음이 끌리는 요즘 우리 서산은 새로운 시장선거의 열기로 달아오르고 후보들의 면면에 사람들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출마의 변을 소리 높이고 자신만이 서산의 시장으로 적합하다고 자랑을 늘어놓고 있지만 유권자들은 그들의 양심과 인격과 경륜을 제대로 따져보고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사람을 선택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평범하여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자기 자신을 잘 안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지난 연말에 석림동에 새로 지은 J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넓은 들녘 끝에 멀리 간월도 앞바다까지 펼쳐지는 시원한 조망권은 방문자들마다 탄성을 지르게 하고 부러워하며 옆으로 이사한 집도 있다. 영화감상을 즐기는 필자는 새집으로 입주를 하며 큰 맘 먹고 홈시어터를 마음에 드는 것으로 바꾸었고 지난 휴일에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라는 제목의 헐리우드 영화를 한편 감상했다. 가상이지만 지구의 온난화(grobal warming)가 계속 되면서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고 기상이변으로 지구 곳곳에 물난리와 지독한 한파가 찾아와서 남쪽으로 피난을 하지만 엄청난 인명피해는 물론 지구 전체가 폐허가 된다는 끔찍한 모습의 연출이 실감나고 기후의 온난화가 지구를 심각하게 위협해오고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최근에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세계의 지도자들은 처음으로 기후변화를 최우선 의제로 논의 했다 한다. 전문서적을 들여다보면 지구의 온난화란 온실효과의 결과로 지구의 평균 대기온도가 상승하는 현상이라 한다. 이산화탄소, 프레온가스, 메탄가스, 질소화합물, 대류권 오존, 수증기 등 대기 중의 미량기체는 지구로 입사하는 태양에너지의 단파장 성분은 투과시키고 지구에서 반사하는 장파장 성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다한다. 이런 작용들로 지구의 온도가 이런 것들이 없는 경우와 비교하여 섭씨 33도 정도를 넘게 유지되게 하는 온실효과를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노스트라무스의 예언도 아니고 구약성서의 이야기도 아니지만 이미 15년 전부터 기후변화의 증거들이 무수히 나왔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의 진행속도를 과소평가하고 간과해온 각국의 지도자들은 이제 서야 정책의 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최근의 보고서에 의하면 지구의 온난화가 대기권에서 온실가스 증가의 결과라는 확신을 주었으니 아마도 온실가스 배출규제에 대한 강력한 정책이 수립되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인간의 삶의 질과 자연과의 상관관계는 어떠할까? 또,“한국에서 제일 살기 좋은 서산”은 어떤 면으로 그리 자랑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산과 물과 논과 밭이 잘 어우러져 먹 걸이가 풍부하고 수해나 태풍 등 자연의 큰 피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성품이 온순하고 서로 인심도 좋다 보니 당연히 살기 좋은 고장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살기 좋은 곳은 결국 자연환경이 만든다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4계절의 순환 법칙과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엄격한 자연의 섭리를 어긋나게 하지 않게 하는 인간들의 노력이 있어야만 진정으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필자가 단 한 번도 내복을 입지 않고 지난겨울을 보냈다. 그러나 이런 지구의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점점 겨울이 없어지고 영화의 장면처럼 자연의 대재앙이 찾아오는 그런 끔찍한 상상으로 소름끼친다. 4월의 새로운 시장도 경제와 문화정책도 중요하지만 우리 서산이 대대손손 살기 좋은 도시가 되도록 자연보호에 전문성을 가지고 누구보다 많은 정책을 제시하고 실천할 후보를 뽑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오피니언
    • 기고
    2007-03-18
  • 〔명예기자 코너〕말다운 말을 하고 살자||박종석
    요즘은 대기오염과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사계절이 사라진 듯하다. 겨울인가 싶으면 봄이 오고, 또 봄인가 싶으면 금방이라도 여름이 올 것 같은 기분이다. 지구 온난화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전염병을 발생시킬 것이고 그리고 생존하는 생물들의 생활패턴을 송두리째 바꿔놓아 결국은 우리 인간에게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인간들이 저지른 과보이다. 산업화를 한답시고 아무 대책 없이 무한정 화석연료나 프레온 가스 등을 사용한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온 것이다. 인류가 생존하는 한 지구 온난화를 아주 없앨 수는 없겠지만 그 속도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충분히 줄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 환경문제가 너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자각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환경파괴로 인해 인간의 생활패턴이 바뀌는 것은 걱정하면서도 자신의 잘못된 생활패턴이 환경을 파괴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환경을 훼손하면 부메랑이 되어 이상 폭설, 집중폭우, 가뭄 등의 극단적인 결과로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생활패턴을 바꾸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리석은 모습, 바로 이것이 무지한 인간인 것이다. 어떤 사람을 알려면 그가 쓰고 있는 말을 보라는 말도 있듯이 말은 그 사람의 됨됨이와 인격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아무리 외형이 멋지고 아름다울지라도 말이 거칠고 험한 사람에겐 아름다운 향기를 발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해치는 말이나 거친 말, 남을 괴롭히는 말이나 원한을 품게 하는 말들을 버리고 부드러운 말, 도리에 맞는 말, 때에 맞는 말, 분명한 말만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람의 생각은 말을 통해 표현되며 언어는 마음을 전달하는 수레다. 말한 후에는 그 말대로 이룰 수 있는 실천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말, 빈말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말다운 말은 가정에서 부부지간, 부모 자식간에도 필요하지만 요즈음과 같은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는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에게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왜냐하면 지도자들이 던지는 말 한마디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을 하는 입이 화합과 평화, 행복의 문이 될 수도 있지만 재앙의 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교언영색(巧言令色)이나 감언이설(甘言利說)은 시간이 지나면 그 본색이 드러나 결국은 상대방을 실망시키거나 배신감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나쁜 결과인 구업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 오피니언
    • 기고
    2007-03-18
  • 공무원도 일 못하면‘퇴출’하는 세상||정영권의 세상 엿보기
    전국의 자치단체 사이에서 일을 못하는 공무원은 퇴출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더 이상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되는 철밥통이 될 수 없는 형편으로 가고 있다. 처음 울산시에서 시작된 이 바람이 광역단체 및 기초자치단체,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삼진 아웃제, 직무능력 향상제, 무능ㆍ태만 공무원 퇴출제 등의 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거나 도입 방침을 밝히고 있다. 업무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업무를 소홀히 하는 공무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이같은 인사시스템으로 공직사회의 경쟁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란 전망이다. 업무능력이 탁월하거나 창의적 제안으로 예산을 절감하는 등 업무능력이 우수한 공무원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업무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단순업무를 부여하고 재교육을 시켜 부서에 재배치하는 3단계의 인사조치를 취한 후에도 개선되지 않을 경우 과감하게 해당 공무원을 퇴출시킨다는 것이다. 이같은 무능 공무원 퇴출이 불이 붓듯 확산되고 있다. 아직 서산시에서는 이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서산시보다 훨씬 재정력이 우수한 지역에서부터 재정력이 비슷하거나 더 못한 자치단체까지 공무원의 철밥통 깨기와 같은 인사가 운영되는 마당에 서산시 공무원들이 특별히 우수한 것도 아닐텐데 수수방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산시의 공직 내부를 획기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이같은 정책 시행을 미룬다면 모르긴 몰라도 이를 시행하는 자치단체보다 더 뒤떨어질 수 있다. 글로벌시대 공무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자세는 버려야 한다. 무사 안일한 관료주의와 철밥통의 폐해는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음을 인식하고 본분에 더욱 충실해야 할 때이다. 따라서 근무태도가 좋지 않고 업무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공무원을 현직에서 퇴출시키기로 하는 것은 하급 직원 및 상급자를 위해서 당연한 조치다. 시민들은 하급직 뿐 아니라 고위직까지 퇴출대상에 포함시켜 엄정 관리하는 등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공무원들 스스로 자기 자신이 업무능력이 동년배나 같은 직급의 공무원과 비교했을 때 절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시험에 합격해 대학교에 들어와도 학습 이해력의 차이로 실력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공부에 소홀해 뒤쳐지는 경우가 있듯이 공채로 들어왔든 아니면 기회가 돼서 전직시험으로 자리가 보존됐든 다들 실력 면에서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평하고 있는 것이 현재 그들의 사회이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면서 오히려 줄서기를 하지 않아 중요 부서에 배치되지 않았거나 승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공무원들도 많다. 하지만 시민들은 업무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고 있다. 업무에 대한 창의력도, 적극성도 없이 대충대충 지내다가 시간이 가면 월급이 나오고 거기다 때가 되면 승진까지 하는 철밥통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일부 공무원들도 금고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으면 강제 면직할 수 없다는 공무원 신분규정을 믿고 일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나태한 정신상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철밥통을 깨는 인사운영 방침은 부실한 대국민 서비스를 강화하는 측면에서도 필요한 조치다. 시민들은 일을 잘하는 공무원을 원한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면서 적당히 시간만 떼우는 공무원은 이제 공공의 적이다. 공직의 특성상 무능과 유능을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이를 판단할 객관적이고 투명한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또 단체장에 대한 충성도 등 주관적 판단에 의한 선출직인 단체장의 재량권 남용과 줄 세우기 차단대책도 마련하면서 철밥통의 공식을 깨는 인사방침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무능하고 태만한 공무원의 퇴출은 보다 잘사는 서산을 위해서라도 시급하다.
    • 오피니언
    • 기고
    2007-03-10
  • 근거없는 상술 기념일 몰아내자||〔명예기자 코너〕조재종
    지난 달 14일은 발렌타인데이로 전국이 떠들썩하게 난리 법석을 떨었다. 자기 부모나 조부모의 제사나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젊은 세대가 많은 가운데 정체 불명의 기념일이 일부 상술에 편승한 기업체의 홍보 덕분에 전국적인 기념일로 정착되고 있다. 물론 일부 대학생이나 의식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날 떡을 만들어 선물하거나 초를 밝혀서 그 의미를 상징화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여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초코릿이라는 것 자체가 남미국가에서 10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노동력을 착취 당하면서 채취한 것을 달콤하게 포장된 채 아름다운 사랑의 맛이나 선물 쯤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초콜릿이 한 개에 2만원 정도에 팔리면 아이들에겐 200원 정도 밖에 돌아가지 않는 사실을 안다면 초콜릿 축제를 벌이는 몰지각한 행위가 얼마나 부끄럽고 잔인한 일인지 깨닫게 될것이다. 특히 어원도 근거도 제대로 모르는 발렌타인 데이가 우리나라에 들어 오고 국가적인 기념일 보다 더 히트를 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를 근거로 매달 명목을 만들어 상술을 조장하는 업자나 네티즌들도 자제하고 반성해야할 일이다. 이제 곧 3월14일이 되면 또 화이트데이라고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사탕을 선물한다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질테고 제과업체는 또 다시 대박이 터져 즐거운 비명을 지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제과업계의 배를 불리기 위한 마케팅은 성공했는지 모르나 전통의 명절의미가 퇴색돼 가고 있는 시점에 상술에 놀아나는 국민과 이를 부추기는 듯한 언론의 행태가 그릇된 외래문화의 각축장으로 전락되는 것 같아 씁슬하다. 이렇게 2월,3월의 기념일을 지나면 매달 14일을 블랙데이니 빼빼로데이니 하는 이상한 날의 이름을 붙여 일년 12달을 제과 업체의 상술의 날로 만들어 국부가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국적 불명의 기념일을 만들고 상술에 놀아날게 아니라 수백년 수천년된 우리의 전통 명절을 계승 발전 시키고 널리 세계에 그 의미와 상징성을 부각 시키는 노력을 해야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 사랑을 고백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날로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어느때 보다 소중한 시점이라고 여겨진다. 지난 4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우리지역에서는 우리 고유의 풍습이 재현됐으며 음력 5월 5일의 단오날과 7월 7일의 칠석날만 하더라도 소중한 풍습과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우리 고유의 명절이란 측면에서 소중하게 이어오고 있는 민간 풍습이다. 이런 날 온 가족과 마을이 모여 창포에 머리 감고 그네도 타고 다리에 올라 오작교의 견우 직녀 만남도 재현해 보면서 그동안 멀어졌던 마음을 한데 모으고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나눔과 기쁨을 함께하는 마당을 펼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이제 제발 정신 차리고 우리문화와 전통을 아끼고 게승 발전 시켜야함은 물론 가장 한국적인 정신과 문화로 세계적인 것을 만들고 이를 자주적으로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문화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가치를 발견하고 지켜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곧 식민문화에 잠식 당하는 지름길이고 서서히 외세에 침략 당해 우리 문화와 글과 정신이 귀속되면서 강대국의 노예가 되는 지름길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2007-03-10
  • 〔특별기고〕공인의 언어순화||김일환/서산지역발전연구원장
    세상만사는 모두가 연대적 상관성을 지니고 있다. 불교의 연기설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그것이 생기는 것은 명확하다. 우리의 일상사가, 날마다 되풀이되는 천체의 운행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되풀이하는 삼라만상이 그렇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무한한 우주적 시간에 의지할 필요도 없다. 당대에, 당일에, 당시에 연기적 현상은 무수히 되풀이 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도 효력을 상실하지 않은 삶의 진리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현상도 우리의 삶에 다반사로 일어난다. ‘메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도 언어생활의 지표로 삼을 만한 속담이다. 속담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기법이 바로 비유다. 이런 속담들이 우리 일상의 삶에 깊이 작용하여 훌륭한 교훈을 주기도 하고,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언어생활에서 속담은 빛을 발한다. 속담이나 격언이 담고 있는 함의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알거나, 직설어법을 완곡어법으로 바꾸어 구사할 수 있다면 우리의 언어생활은 물론이요,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의도를 직설적으로 구사하여, 발언 의도를 필요 이상으로 강경하게 함으로써 상호관계를 경색시키는 언중으로 ‘조폭과 정치인’을 들 수 있다. 조직폭력배야 원래 의도하는 바가 상대에 대한 강압적인 위협을 생리로 하는 집단이니 더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 시작부터 끝까지 육두문자나 원색적인 욕설로 범벅되어 있다. 가족과 함께 이런 영화를 관람하려면 매우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언어가 이를 닮아가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착각할 때가 있다. 민주 절차에 의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조롱거리로 삼고, 삼권 분립이나 지방자치의 원리와 원칙을 무시하고 사건 사고만 났다하면 온갖 책임을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뒤집어 씌우며, 정치적 금도가 지켜지지 않는, 죽고살기식 상대 깎아내리기를 의도하는 정당 대변인들의 성명은 이 나라 정치의 수준을 추락시킬 뿐이다. 절친한 친구 사이에도, 설사 의견이 대립하여 언쟁을 벌이는 사이에도 써서는 안 될 말이 있다. 대립되는 논점에서 벗어나 인격적 모욕을 준다든지, 저주나 욕설이 가까운 폭언을 한다든지, 상대방의 약점을 집요하게 물어뜯는 음해성 정치언어는 이제 그만 둘 때도 되었다. 왜냐하면 이런 정치언어들이 정치의 수준을 하락시킬 뿐 아니라, 국민 정서를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이런 강경하고 무례한 언어는 조폭들이나 쓸 수 있는 말이요, 폭력적 위세에 밀려 위협당하는 사람이나 들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지지를 얻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나, 집권을 꿈꾸는 정당들이 쓸수 있는 용어는 아니다. 이런 거친 언어를 구사하면 그 반응은 곧바로 부메랑이 되어 발설자에게 고스란히 되돌아간다. 설사 거친 정치언어가 순간적인 쾌감을 주고, 음해성 대응이 자신을 지지하는 지역이나 국민들로부터 환호를 받을 수는 있어도 결국은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다. 우리 국민은 이런 정치언어를 기대한다. 정적의 인격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촌철살인(寸鐵殺人)할 만한 영향을 주는 정치언어, 들을 때는 폭소를 자아내지만 생각할수록 듣는 이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유머러스한 정치언어, 국민에게 삶의 진정성을 성찰케 하는 정치언어는 진정 연목구어란 말인가? 정치언어도 문학에 접근해야 한다. 문학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시인 작가와 같은 언어생활을 부지불식간에 구사한다. 속담을 구사하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든지, 잠언을 빌어서 가족이나 아랫사람에게 덕담을 주거나 훈계한다. 문학적 함의는 언어생활의 격조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비유적인 표현이나 완곡어법 등은 문학의 주요한 표현기법일뿐 아니라, 우리의 언어생활에 윤기를 더해주고 건조하기 쉬운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데 기여한다. 공인, 특히 정치인들도 이런 비유적인 표현이나 완곡어법을 구사하여 성숙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삭막해지기 쉬운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데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
    • 오피니언
    • 기고
    2007-03-03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