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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5.12.0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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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 수능이 끝나고 이제는 발표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필연적으로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가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를 기다리는 수험생들의 심정은 애간장이 끓으리라 생각된다. 산다는 것이 경쟁의 연속이고 고난의 연속이라는 말이 실감나기도 하는데 수험생도 수험생이지만 어쩌면 수험생을 둔 부모의 입장이 더 더욱 애가 끓지 않을까 생각된다.

경쟁사회에서 낙오되거나 뒤쳐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수 없이 크고 작은 실패들을 경험한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만큼은 수능이라는 인생의 한 고비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도대체 자식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부모의 애를 끓이는 것일까? 부모의 사랑은 아가페적인 사랑이라 원인도 이유도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문득 문득 자식이 뭐길래…하는 원초적인 의문이 들기도 한다.

굳이 자식이란 의미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부모의 사랑이 조건 없는 사랑이듯 자식의 의미는 말 그대로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닐까 한다. 자식은 그 어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숙명적인 존재들이다. 자식의 일희일비(一喜一悲)가 그대로 부모의 일희일비(一喜一悲)가 되지 않던가.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사랑받을 권리를 가져야 하고 그 권리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수능이 끝난 이즈음 물론 수능의 결과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수능의 결과 보다 더 중요한 자식에 대한 변함 없는 사랑을 바라게 된다. 인생이라는 거친 파도의 고해 속에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구명선은 그 무엇보다 사랑이 더욱 유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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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난 이즈음에||자문위원 칼럼 정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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