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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3.01.3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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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타임즈에는 시민들로 구성된 2개 단체가 있다. 운영위원회와 지역기자회다. 현재 운영위원회는 20명이, 지역기자회는 9명이 활동하고 있다.

운영위원회의 사전적 의미는 ‘조직이나 기구 등에서, 운용과 경영의 실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만든 합의제 기관(合議制機關)’이다. 그러나 서산타임즈 운영위원과 지역기자는 언론사의 특징을 살려 ‘옴부즈맨(ombudsman)’역할까지 하고 있다. 옴부즈맨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의 권리 옹호자 또는 민원 도우미다. 언론계에서는 독자위원, 독자권익위원이라 칭한다. 이를 더 확대하면 ‘독자의 대표’라고도 일컬어진다. 언론의 공정성, 객관성이 중요해지는 요즘 언론 구성원과 독자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하는 옴부즈맨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설 연휴가 지나자마자 서산타임즈 운영위원회 제6대 회장 이임식과 제7대 회장 취임식이 열렸다. 본사 회의실에서 열린 이·취임식은 본사 구성원들만 참석했지만 평소 지역 언론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수의 부의장과 김용경 의회 운영위원장, 안원기 산업건설위원장이 참석했다. 이들 의원들은 운영위원들을 향해 “서산타임즈 발전을 위해 운영위원들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면서 “언론이 지역의 중요한 한 축이니 지역과 함께 조화롭게 잘 녹아들 수 있도록 지향점을 잘 세워달라”는 뼈 있는 의견을 직접적으로 제시했다.

이·취임식을 마친 후 이어진 저녁식사 자리. 이 자리에서 운영위원들은 서산타임즈가 개선해야 할 점이나 잘한 점 등 위원들의 송곳 질문에 신문사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본지의 속살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이는 자리였다. 무엇보다 언론에 대한 위원들의 돋보이는 식견이 놀라웠다.

서산지역에서 다양한 직업군의 운영위원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시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더욱 매진해 달라”고 주문했다.

일간지와 전문지, 주간지 등을 두루 섭렵한 필자로서 나름 언론에 대한 이해도, 독자들의 권익 침해나 이익을 가슴속에 오롯이 품고 생활하고 있다. 물론 불편부당, 정론직필이라는 저널리즘의 본령은 최우선 가치다.

여기에는 ‘사회적 공기’로서의 공적 기능과 사기업이라는 사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애로사항이 있지만, 여태까지 변함없이 무탈하게 버텨왔다.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정신세계를 교감할 수 있는 ‘창의 역할’을 하는 언론사의 조타수로서 ‘불변의 고객’인 독자를 위해 “단 한 명의 독자가 있더라도 나의 글쓰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는 어느 노 언론인의 철언을 차근차근 실천해 옮길 것이라는 다짐은 요즘 들어 더욱 도타워지고 있다. 세월의 더께가 쌓이면 현실과 타협하거나 안주하게 되는데, “뼛속까지 언론인 DNA가 새겨진 못 말리는 이놈의 체질이라곤.”이라며 살짝 자괴감이 들곤 한다.

 

똑똑한 독자들이 언론과 언론인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체급을 저울질하거나 그들의 머릿속에 이미 언론에 대한 견적서가 작성된 게 현실이다. 독자들의 대표인 운영위원회와 지역기자회는 매너리즘에 빠져 나태해지려는 유혹을 물리쳐주는 매서운 조언자이자, 신문의 질을 높여주는 훌륭한 협력자다.

“주위에서 들려주는 저희에 대한 날카로운 비난, 비판을 가감 없이 전해 달라”는 게 필자의 마지막 부탁이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자리에서 한 운영위원이 던진 메시지는 아직도 귓전에 어른거리면서 나의 방향타가 되고 있다. “신문 기자는 평범하면 안 되죠. 기자다운 맛이 있어야 하죠. 소금과 같은 역할 말이죠. 짠맛이지만, 때론 없어서는 안 되는 음식의 훌륭한 재료, 때론 이 사회의 부패를 막아야 하는 방부제 역할을 하는 그런 거죠” 잠시나마 자만해 있던 나를 채찍질을 하는 그런 발언이었다.

「파이 이야기」로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 부커상에 빛나는 캐나다 출신의 작가 얀 마텔(Yann Martel)은 “소설의 운명은 반은 작가의 몫이고 반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작품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라고 말했다.

이 말 가운데 ‘소설’과 ‘작품’을 ‘신문’으로, ‘작가’를 ‘기자’로 달리 표현하면 신문의 나아가야 할 방향이 명확해질 것이다. 독자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살아 꿈틀대는 신문, ‘미지의 독자’를 향한 우리의 황소걸음은 계속될 것이다. 운영위원 그리고 지역기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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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무서운(?) 운영위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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