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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6.03.2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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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신 스님 약력 ㆍ속명 박금성 ㆍ1969 예산 수덕사 입산  ㆍ1976 법장 큰 스님 은사, 춘성 큰 스님 게사로 수계 ㆍ1981 가수 이남이와 인연으로 대중음악 입문  ㆍ1990 국악가요 공연(세종문화회관) ㆍ1991 국악가요 1집 출반(서울음반) ㆍ1997 춤극 공연(국립극장)  ㆍ2001 대한불교조계종 서광사 주지  ㆍ2005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호법부 조사국장

 

 

“사찰의 경영도 변화된 상황에 맞게 바뀌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불교도 크게 변하지 않으면 화석화되고 말 겁니다”

도신 스님은 “절집에도 경영 마인드를 도입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예컨대 현재 서산시나 서광사의 신도들 힘만으로는 지난 8월에 착공한 대웅전 완공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것. 새로운 경영 기반을 마련하지 않으면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기반을 토대로 서산지역에 테마가 있는 3사(寺)순례지로 성장시켜나가는 것. 단순하게는 법장 큰 스님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지만 더 나아가서는 서산지역 발전을 위한 기반을 조성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그래서 도신 스님이 지난 해 11월부터 일주일에 닷새를 조계종 총무원에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도신이가 서울로 간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총무원장 배출한 지역에

내세울만한 절 하나 없어


도신이가 상경한 이유는?


“그 자리(조사국장)에 있으니까 그래도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이 찾아주지 이곳에 있으면 누가 찾아주기라도 하나요”

지난 18일 오후 서광사에서 만난 도신 스님은 지난 해 9월에 입적한 법장 큰 스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법장 스님의 영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원장 스님만큼 서산을 사랑한 분은 없을 겁니다”아직 스님 영정앞에서 기도하듯 모든 일들을 보고한다는 도신스님은 법장 스님의 애향심은 누구보다 강했다며 서산에 반듯한 절하나 짖는게 큰 스님의  염원이셨다 밝혔다.

“총무원장을 배출한 서산지역에 자랑할 만한 절 하나 없다는게 말이 됩니까?”그래서 도신 스님은  큰 스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서산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이고 속된말로 제대로된 절 하나 만들어 보자고 조사국장 임명을 흔쾌히 승락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3사(寺)순례가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생전에 법장 큰 스님이 단지 불교계의 발전을 위해 대웅전 건립을 추진했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도신 스님은 서산지역이 이러한 3사(寺)순례지로서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강조한다.

“도심과 농촌 그리고 암자로 이어지는 불교테마코스를 상상해 보세요. 이러한 순례코스를 제대로 개발하자는 것이 법장 큰 스님의 의지였지요”

법장 큰스님이 그린 코스는 보원사의 마애삼존불-서광사의 여래보궁 대웅전-간월암을 순례하는 이른바 3사(寺) 순례 관광코스로 만들어 서산지역 발전에 도움을 주고자했다는 것이다.

“법장 큰 스님께서 원하셨던 만큼 뒷 마무리는 제가 책임져야지요”

리틀 법장으로 일컫는 도신 스님이 서울로 간 이유다.


도신이는 리틀 법장


불교계뿐 아니라 서산지역에서 도신 스님과 법장 큰 스님의 관계는 절대적이다. 그만큼 도신스님은 생전에 법장스님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이젠 서산이 고향이 됐지요”비록 서산의 삶의 시간은 6년에 불과하지만 도신 스님은 법장의 고향이요 영혼이 깃든 서산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도신 스님이 서산을 고향으로 생각하는데는 스님 성격과 서산이 아주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도 스님의 이유다.

그러나 의외로 조용한 듯하면서도 뒤통수를 맞는 곳도 서산이라며 서울에서도 서산사람 대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곧잘 듣곤한다고 말했다.

“제가 부임하기전까지는 서광사에서 2년을 넘긴 주지 스님이 안계셨답니다”

지난 2001년 서광사 주지로 부임한 이후 올해가 6년째니까 서광사가 주인을 제대로 맞긴 맞은 모양이다.

“이곳 서광사는 법장 큰 스님의 혼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법장 스님이 살아생전에 서산을 사랑했던 것 만큼 도신스님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법장 스님과 도신스님의 만남


법장 스님과 도신스님의 인연은 1969년부터다. 당시 양부모를 여의고 큰아버지 댁인 온양에서 친지의 소개로 법장스님이 계신 수덕사에 맡겨졌다.

14살이 되도록 잠자리에 지도를 그렸다는 도신 스님은 법장스님에게 그럴때 마다 혼도 많이 났다. 그렇게 두 스님의 인연은 시작됐다.

“글을 못배우게 하셨지요”도신 스님은 정규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다. 글을 익히면 속세를 떠날 것 같다며 법장 스님이 아예 학문과는 담을 쌓게했다는 것이다.


도신이가 노래한대요


서광사 도신스님의 집무실이자 처소 한쪽 벽면에는 중광스님이 그렸다는 얼개 그림이 걸려있다. ‘도신이가 노래한대요’

학문을 익히지 못한 도신 스님의 노래 솜씨는 익히 소문난 그대로다.

“큰 스님 밑에서 돈만 모아지면 시장에 나가 기타를 구입했다”는 도신 스님은 스님이 무슨 노래냐고 핀잔하는 법장 스님의 눈과 귀를 피해 기타를 쳐야만 했다.

산등성이 넘어 기타를 치다 큰 스님에게 들키고, 그 때마다 기타는 어김 없이 부서지고 또 돈을 모아 기타를 구입하는 집념을 보였다.

“하루는 큰 스님이 외출한 틈을 타 새벽3시에 기타로 염불을 하는데 느닷없이 큰 스님이 나타나 신성한 법당에서 기타를 친다고 하여튼 그 때처럼 많이 혼나본적이 없어요”

과거를 회상하는 도신 스님의 눈가에는 이미 큰 스님이 자리 잡은 듯 숙연해졌다.

이러한 시련을 겪어가며 노래에 대한 집념을 잃지 않자 큰 스님으로부터 “이왕 노래하려면 제대로 해보라”는 허락이 떨어지며 중광스님에게 도신 스님을 소개했다. 중광스님은 도신 스님의 노래를 듣고는 가수 신중현씨와 이남이씨 도신스님에게 선물했다.

도신 스님의 전문적인 음악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법장 큰 스님을 빛내야죠


“서광사가 성장하는 것은 도신이를 빛내는게 아니고 원장 스님을 빛내는 겁니다” 도신 스님은 지난 해 일부 언론이 제기한 서광사 특혜 운운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법장 큰 스님이 살아 생전에 서산지역을 위해 얼마나 애착을 갖고 있었는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말한다.

도신 스님은“큰 스님께서 총무원장으로 있으면서 서산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한 평가가 새로 조명되어져 한다”며  “한때 한국 불교계를 평정한 인물이지만 서산사회에서 큰 스님을 위해 무엇을 했는 가도 뒤돌아 보아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서산지역에 어른이 없다는 말들이 있다.

서산지역으로 부임하는 기관장이 마땅히 인사할 어른이 없다는 현실은 그만큼 서산에 인물이 없었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법장 스님 입적 200여일을 즈음해 도신 스님이 서산사회에 던지는 ‘큰 스님을 빛내기 위한 작업’의 의미에 긍정적인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이병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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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리틀법장 서광사 주지 도신 스님||“간월암-봉원사-서광사 3寺 순례코스 서산지역 경제발전에 큰 도움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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