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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추석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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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9.1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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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추석 명절에 관한 속담이 있습니다. 그만큼 추석은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이자,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가장 풍성한 때입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코로나19의 출현으로 2년째 명절다운 명절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올해에는 막혔던 고향길이 뚫리고 예전처럼 고속도로가 막히는 상황을 TV 화면으로 보고 있자니 오히려 그 모습이 반갑기 조차 합니다.

필자는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두었습니다. 아들 둘은 모두 인근에 살고, 딸은 멀리 파리에 살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가족끼리 명절이 아니래도 언제나 함께 할 수 있지만, 지난해 추석 명절에는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며느리가 미장원을 운영하고 있기에 방역 수칙에 따라 각자 자기 집에서 명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큰아들 내외는 전날부터 아이들과 같이 와서 음식을 장만하였습니다. 부엌에서는 고부간 도란거리는 소리, 간간이 들리는 웃음소리가 마치 음악을 듣는 것처럼 듣기에 좋았습니다. 오후에는 랍스터라는 바닷가재 잔치를 벌였습니다. 비싼 탓에 감히 나 같은 형편에는 그런 음식은 사 먹을 엄두도 못 냈습니다. 아들은 그걸 식구 수대로 사 왔습니다. 그리 넉넉한 형편도 아닌데 무리를 한 듯싶습니다.

아들은 전용 집게로 먹기 좋게 잘라 살을 발라서 둘러앉은 사람마다 접시에 올려놔 주었습니다. 아들이 언제 먹는지조차 신경 쓸 새도 없이 먹는데 정신 팔렸습니다. 가제 살에 소스를 발라 입에 넣으니 형언할 수 없는 특유의 미감(味感)이 온몸을 지배했습니다. 한 모금 마신 포도주가 더욱 맛을 돋우어 주었습니다. 물론 랍스터의 맛도 좋았습니다. 내 생애 겨우 두 번째 먹을 만큼 그리 흔하지 않은 음식이지만, 비단 음식 맛 뿐은 아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기쁨과 부모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전해져와 그렇게 맛있게 느낀 것입니다.

음식은 별도의 고유한 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는 맛은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 사이만큼 다릅니다. 라면 한 봉지를 먹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꿀맛이 되고 진수성찬을 차려놔도 싫은 사람과 같이 먹는다면 소태 씹는 맛이 납니다. ‘행복이 이런 거로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사랑하는 가족이 무사히 한자리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모두 건강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아들 내외의 정성 깃든 효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싶었습니다.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간 아들은 추석날 아침 일찍 아이들과 함께 다시 왔습니다. 둘러앉아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송가 가사가 가슴을 울렸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시편의 말씀도 우리 가족을 향한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아들 내외는 하루가 다 가도록 우리와 함께해 주었습니다. 손자 손녀와 아들 내외가 우리와 함께 하루를 보내기로 작정한 듯싶었습니다. 쇠고기도 구워 먹고 송편도 먹었습니다. 송편은 아내가 밤새도록 혼자 빚은 것입니다. 아내도 기쁜 모습입니다. 저녁 먹은 후에 돌아갔습니다.

아들을 돌려보낸 후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현명하다고. 우리가 죽은 다음에 아무리 상다리 부러지게 제상을 차려 지극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낸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요? (물론, 우린 기독교 가정이니 제사를 지낼 일도 없겠지만,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문득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아들만큼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바쁜 핑계를 대고 아침 먹은 후,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와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명절 하루만이라도 이렇게 최선을 다해 부모 마음을 기쁘게 한 아들이 고마웠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아들이 아들에게 말없이 큰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들 내외와 손자들과 함께한 명절, 올해 최고의 추석 명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추석 명절조차 원망스러울 태풍 피해지역을 떠올리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모쪼록 용기를 잃지 마시고 힘내시기를 빕니다./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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