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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돌려다오.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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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3.24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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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새벽에는 차창에 낀 서리를 제거해야 하고, 여전히 방한복을 벗어 놓지 못하지만, 한 낮엔 아침에 입고 나왔던 옷이 거추장스럽다. 아직도 겨울처럼 살고 있지만, 어느새 봄은 와있는 것이다.

봄은 제일 먼저 우리 집 화단으로 찾아왔다. 한겨울 추위에 얼지 말라고 덮어두었던 가랑잎을 걷어내자 온갖 꽃이 고개를 든다. 제일 먼저 샛노란 복수초꽃이 피었다. 이어서 노루귀, 개불알꽃이 피었다. 작고 앙증맞은 모습이 마치 웃고 있는 어린아이 얼굴 같다. 수선화, 튤립도 질세라 꽃대를 밀어 올린다. 이런 꽃들을 들여다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어느 꽃인들 예쁘지 않은 꽃이 없다.

도대체 봄은 어디까지 왔나 싶어 부춘산에 올라가 보았다. 산에도 조금씩은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랑잎 사이에서 파란 풀들이 솟아나고 작은 나무의 실가지엔 조그만 이파리가 보였다. 아니, 큰 나무도 그냥 서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등산로 옆에 서 있는 나무에 귀를 대어 보았다. 나무의 뿌리에선 정신없이 수액을 만들어서 가지로 보내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가지를 흔들고 가는 소리인지는 몰라도 내 귀에는 수액을 빨아올리는 힘찬 나무의 펌프질 소리 같이 들렸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추운 겨울을 벗어나서 만물이 소생하는 봄, 울긋불긋 꽃 대궐 이루는 봄이 어찌 그립지 않으랴? 그러다 문득 봄을 기다리는 꽃들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겨우 내내 추위를 견디며 아름다움을 준비해서 피운 꽃들이 작년처럼 푸대접받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가여웠다.

작년 봄이었다. 그야말로 화창한 봄날이었다. 모처럼 L목사님과 함께 봄나들이를 나섰다. 목적지는 몇 해 전에 신문에 소개되었던 금산의 관광지였다. 개심터, 칠백의총, 12폭포, 적벽강 등이 화려한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오전 10시경 출발하여 금산에 도착해보니 거의 정오가 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도 있듯이 먼저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갔다. 점심때가 되었는데도 식당은 한산했다. 주인에게 물으니 코로나 때문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헛걸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하늘 물빛 공원이 있다기에 찾아갔으나 입구에 ‘코로나19로 입장 불가’라는 팻말이 냉정하게 길을 막고 있었다. 남이 자연 휴양림도 다르지 않았다. 아쉬워서 ‘12 폭포’ 한가운데라도 더 가보자고 했으나 L목사님이 반대해서 그냥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세상 물정 몰라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에 후회막급(後悔莫及)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니 전국 각처의 유채꽃 축제가 취소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TV에서도 연일 각종 꽃 축제 취소 소식을 보도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꽃을 보기 위해 몰려들자 마을 입구에 ‘외지인 출입 금지’라는 처방도 모자라 애써 가꾼 유채꽃을 갈아엎었다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도대체 꽃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가? 겨우내 온갖 설한풍을 견디며 아름다운 자태를 맘껏 뽐내려 피운 꽃들을 그렇게 짓밟다니…. 새삼 코로나19가 미웠다. 그걸 보고 작년 이맘때 썼던 ‘슬픔의 봄’이란 시를 들춰 보았다.


「언제 저토록 서러워 보인 적/있었던가?/ 언제 저토록 외로워 보인 적/ 있었던가?// 환영받지 못한 꽃/잔뜩 피워놓고/ 애써 찾아온/봄은,/ 봄은 슬프다//유리알 같은/ 파란 하늘이/ 오히려 낯선 봄날//제발 꽃을 보러/ 오지 마세요// 코로나19가/봄까지 울리는구나!」


문득,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이상화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그때는 일제가 우리 땅을 빼앗았다면, 지금은 코로나19가 이 땅을 빼앗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지금쯤 함평에도, 낙동강에도 유채꽃이 피었으련만, 신문엔 꽃에 관련된 기사는 한 줄도 없다. 구례 산수유꽃, 진해 벚꽃, 화개장터 매화, 십리 벚꽃, 원동 마을 매화꽃. 정말 가보고 싶다. 코로나19여! 제발 봄을 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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