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5-16(금)

기생 월매향이 반한 출중한 용모…늦은 밤 찾아온 월매향

[서산타임즈 창간19주년 특별연재] 일화를 통한 정충신 장군 일대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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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10.0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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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타임즈가 창간19주년 특별기획으로 ‘충무공 정충신 장군의 일대기’를 연재한다. 정 장군의 일대기는 충무공 정충신유적현창사업회(회장 이철수, 전 서산시의회 의장)와 김인식 국사편찬위원회 조사위원이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다. 정충신 장군의 일대기 연재는 묻힌 역사적 인물을 복원하자는 취지다. -편집자 주-

 

9_진충사.png
▲충무공 정충신 장군의 유택이 있는 진충사 전경.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사당 내에 잡풀이 무성하고 사당 곳곳에는 거미줄이 가득해 충무공의 사당이라는 숭고한 뜻을 담은 현판마저 초라해 보인다.

  

소년 정충신은 과연 똑똑하고 영리하며 용모도 어여쁜데다 새까만 눈은 마치 새벽 샛별이 정기를 쏘는 듯 반짝거리고 윤곽이 뚜렷한 휜 얼굴은 흡사 살 속에 분을 따서 넣은 듯했다. 여기에 나이어린 아이건만 구변이 좋으니 귀여운 입술을 움직여 영악한 말을 뱉어 버리면 보는 사람은 누구나 사랑스런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영문안에는 드나드는 기생들이 많았다. 정충신의 용모가 출중한데다 말 한마디 하는 것과 손 한번 흔드는 것조차 귀여워 나이 먹은 늙은 기생들은 안아줄 듯 귀여워하고 나이어린 기생들은 소년 정충신의 눈에 힐끗 띨 때마다 남몰래 얼굴을 붉히고 가슴을 조였다.

 

이 중 늙지도 젊지도 않은 월매향이라는 기생이 있었다. 나이는 스물 댓, 얼굴과 가무는 원래 광주 부중에서 제일 이름난 기생이고 능란하고 정 많고 말 잘하고 협기 있고 윗사람 공경하고 아랫사람은 후히 대접할 줄 알아 육방관속은 말할 것 없고 사령 군노들까지 모두 ‘월매향 아주머니!’,‘월매향 누님!’하며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인물과 수단이 이만하니 신임 사또가 내려오기만 하면 행수기생도 수청기생도 월매향이다. 웬만한 사또면 부임 첫날에 벌써 월매향의 녹실녹실한 몸맵시 사각사각 스치며 늘어진 스단 치마와 엷은 옷 사이로 아른 아른 엿보이는 살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으니 매정하고 깐깐하고 무서워서 아전들이 쥐구멍을 찾는 빳빳한 사또라도 월매향이 수청 들어간 지 이틀 밤이면 다음날에는 반드시 사또의 웃는 얼굴을 보고야 만다. 이러하니 가는 사또와 오는 사또보다도 남치마 늘어뜨린 행수 기생 월매향이 진짜 사또 격이었다.

 

어려운 공사만 있으면 호방, 이방, 형방이 월매향을 찾았고 월매향이 한번 싱긋 웃으며 “그러시구려! 오라버니, 뒷감당은 내가 하리다” 라고 한마디만 하면 수십 백량의 돈이 월매향의 곳간으로 들어왔고 자연히 월매향은 거부가 되었다. 월매향은 자기 손에 재물이 모여지니 동리에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돈이나 식량이나 심지어 피륙이라도 아낌없이 인정을 베풀었다. 월매향의 인간됨이 이러하니 영무 안 관속들은 물론이려니와 주위의 백성들까지 “월매향 아씨! 월매향 아씨!”하고 부르며 따랐다.

 

이 월매향이 미소년 정 통인에게 마음이 기울어졌다. 어린 동생을 귀여워하는 철난 누이 같은 마음일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월매향은 스물다섯의 한참 무르녹게 다 핀 한 떨기 해당화 같고 정통인은 열일곱 살의 훤칠하게 다 자란 미소년으로서 새 날개를 봄바람에 팔랑이는 깨끗한 호랑나비 격이라 정 충신은 모르지만 농익은 한 떨기 해당화 같은 월매향은 늙고 탐심 많고 능글맞은 호랑나비 보다 산뜻하고 귀엽고 신선한 노랑나비인 정충신에게 마음이 쏠렸을 것이다. 이때의 정 충신의 모습은 외압장이 월매향이 아니라도 집어 삼킬 듯이 귀여웠다.

 

삼문 안 동협 마당에서 월매향은 사또의 눈치를 살펴 정충신의 어깨를 툭 치며 희롱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정 충신의 머리채를 만지며 “어쩌면 머리를 예쁘게도 빗었구려. 정 통인의 머리 한번 빗겨 보면 한이 없겠소” 하며 수작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면 정 충신은 두 볼에 살짝 홍조를 띄워 소년다운 부끄러움을 내보이기도 하면서 천연스럽게 대답했다. “그 소원 뭐 그리 대단치 않으니 당장이라도 빗어보구려”

또 어떤 월매향이 정 충신의 손을 잡고 손을 잡고 손금을 보아주겠다고 수작을 하면 사또를 대며 휙 돌아서는 그 쌀쌀함에 산전수전 다 격은 월매향이건만 민망하고 무안함에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어느 날 정 충신은 밤늦도록 사또 곁에서 시중하고 자기 처소로 돌아와서 불을 끄고 막 자리에 누우려고 할 때 방문이 살며시 열리며 인기척이 났다. 정 충신은 “거 누구요?” 하고 물으니 “나예요”한다. 다시 “내가 누구란 말이요?”하면 “내 목소리도 못 알아 들어요” 하는 대답은 매운성스럽기만하다. 정 충신은 어둠 속에서 옷매무새를 갖추고 일어나 촛대에 꽂힌 초 등걸에 불을 켜니 월매향의 자태와 얼굴이 환하게 드러난다. “웬 일이유? 이 밤중에 자지 않고”, “잠은 날마다 자는 잠인데 하루 밤쯤 안자면 어떠우?” 월매향의 대답은 추근거리며 녹녹한 것이 여인의 정을 담고 있었다. 월매향은 대답하며 남치마 자락을 걷어 올리니 하얀 속살이 다소곳이 드러나고 남숙수 중등끈이 풍성한 허리춤에 뵐 듯 말 듯 감돌았다.

 

정충신은 다소 퉁명스레 대답한다. “얼근 가 보시우 공연히 남 잠도 못 자게 하지 말고”, “왜 내가 그렇게도 귀찮단 말이요?” 월매향은 서운한 듯이 말하고 방 윗목에서 다담상을 들어 정충신 앞에 갖다 놓는다. 상에는 수란 편육 전유어에 보기 좋은 약식이며 다식정과와 함께 따끈한 장국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다.

 

월매향은 하얀 손을 들어 합뚜껑을 열어 음식을 권하여 말한다. “정 통인 생각하고 마련하여 왔으니 출출 할텐데 자시구려.” “그런데 이게 원 거요?” “실상은 아까 사또께서 잔치 하시던 퇴선인데 정통인 생각해서 가지고 온거야”

정충신은 기색이 일변하며 벌떡 일어나 상을 탁 차 버린다. 장 국물이 주르르 월매향의 남치마 자락을 적신다. “사내자식이 절도사가 된 다음에 먹다 남은 음식을 남에게 준다면 모르되 구구하게 남이 먹던 찌끼를 먹는 말이요”하며 분연히 월매향을 나무라는 소년 정충신의 기상은 씩씩하였다.

월매향은 처음에는 발끈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 사내다운 늠름한 말을 듣고는 미안하여 고개를 숙여 얼굴을 들지 못하고 “미안하다”고 겨우 한마디 말한 뒤에 엎질러진 그릇을 주섬주섬 수습하여 황망히 방을 나왔다.

 

한편 이때는 임진왜란 때이라 위에서는 의주를 파천해 계신 때라 조정 백관들도 다 상감을 모시고 있게 되나 모든 군사 일과 공사는 의주로 장게해서 올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때 정충신이 속해 있는 광주의 목사는 권률 장군이었는데 권률 목사는 군사 일을 삼감께 품하여 올리려 하니 경, 충청, 전라, 각도가 적군이 만산편야 하여 길목마다 진을 치고 파수를 보고 있으니 서로 연락을 취할 길이 없으매 권률 목사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인물이 없어 군중에 영을 놓아 누구든지 장게를 만들고 적진을 뚫고 나가 무사히 삼감께 바치는 자가 있으면 후한 상과 벼슬을 주리라 외쳤다. 그러나 워낙 위험스럽고 무거운 직책인지라 누구 한사람 자원하여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소년 정충신이 썩 나서서 말하였다.

 

“소인에게 맡기시면 갔다 바치오리다.” 권 목사는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반가운 기색이었으나 정충신의 나이 어림을 염려하여 말하였다. “네 말은 기특하다. 하지만 나이어린 너를 위험한 도로에 수 천리를 어찌 보낼 수가 있단 말이냐? 네 청을 허락할 수 없구나.” 하니 정충신이 또 말하기를 “장게를 보낼 일이 급한데 보내는 계획은 아니 하시고 보내지 못하는 계획만을 하십니까? 보내는 책임을 소인에게 맡기시어 잘 갔다 바치면 다행 이옵고 설령 가지고 가지 못한다 하여도 사또께서는 헛걱정 하시는 것밖에 안되오니 소인에게 맡기십시오. 소인의 나이 어림을 염려 마시고 장게를 빨리 주십시오”

 

핀잔과 재촉의 소리로 정충신이 권률 장군에게 조르니 권 목사는 본래 충신의 근신함을 믿어왔고 지금 그 명쾌함을 장하게 여겨 장게 한통을 자세히 써서 단단히 봉하고 또 편지 한통을 써서 봉하여 충신에게 주며 “이 장게는 임군께 올리는 것이고 이 편지는 지금 행재소에 호종하여 있는 병조판서 이항복에게 가는 편지이다. 이항복은 나의 사위인데 인품이 강명 정직하여 가히 알아 둘만한 사람이니라. 그에게 편지를 전하고 이 장게를 상감께 바치라고 하여라. 그렇지만 네가 능히 도착할지 모르겠구나” 하니 정충신은 아무 말 없이 장게와 편지를 받아들고는 “이틀 후에 떠날 터이니 그런 줄로 통촉하십시오”라고 인사를 드린 뒤 자기 집으로 물러갔다. 자기 집에 돌아 온 정충신은 장게와 편지를 뜯어 가지고 칼로 쭉쭉 잘라 노끈을 꼬아 그 노끈으로 망탱이를 만들어 그 안에 헐어 못쓰게 되어버린 옷 두어 가지를 넣고 나서 옷 나무 밭에 가서 옷 나무를 잘라 생 옷을 내어 얼굴과 몸에 바르고 다 떨어진 옷으로 살만 가린 뒤 짚신과 미투리 한 짝을 양 발에 신고 바가지 하나를 꿰어 차고 망탱이를 둘러메고 막대기 하나를 짚고 헝클어진 머리를 하니 그 모습이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라.

 

충신의 부친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충신의 모친은 살아 계시매 그 아들의 차림을 보고 붙들고 울며 말했다. “너 혼자 어디로 피난을 가느냐. 피난을 가면 그냥 갈 것이지 그 차림이 무엇이냐?”하고 물으니 정 충신은 “아니올시다. 어머님을 버리고 저 혼자 피난을 갈리 있겠습니까. 나라일로 사또의 심부름을 가는 것이니 어머님은 제가 있으나 없으나 사또께서 극진히 보호해주실 터이오니 저는 걱정 하시지 말고 편안히 계십시오”라고 말했다.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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