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5-16(금)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5.04.01 20:36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가기천.jpg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솟구치는 불기둥, 널름거리는 불길이 긴 띠를 이루며 산등성이를 휘감아 달리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마치 미국, 캐나다, 호주 대륙에서 며칠씩 타오르던 산불을 우리나라에서 보는가 싶었다. 기나긴 대피 행렬, 화염과 연기를 뚫고 달리는 자동차는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분명 우리나라 영남지방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이었다. 지난 3월 21일부터 시작되어 열흘 동안 꺼질 줄 모르던 산불은 축구장 6만 7천여 개의 면적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영남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영향 구역은 4만 8천여㏊에 달한다. 서울시 면적의 80%에 이르는 넓이이다. 이번 산불로 30명이 숨지고, 45명이 부상을 입는 등 75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기동이 어려운 노인들의 피해가 컸다. 환갑이 넘은 민간 진화대원들이 장비도 못 갖춘 채 산불 현장에 투입됐다 숨진 비극도 있었다. 헬기 조종사가 헬기를 몰고 출동하다 추락해 숨지는 사고도 일어났다. 아직 정확한 조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시설 피해도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대본 잠정 집계로 건물 총 6,192개소가 피해를 보았다. 경북 지역에서만 주택 3,265채가 전소됐다. 문화재 피해도 컸다. 천년고찰인 의성 고운사의 보물 연수전과 가운루가 불탔다. 국가유산청에서는 30건의 문화재가 피해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잃었고 삶의 터전을 앗아갔다. 밭과 비닐하우스가 탔고 농기계도 화마를 견디지 못했다. 소, 돼지, 닭 등 가축도 잃었다. 공장이나 운동시설도 잿더미로 변했다.

 

산불 형태와 규모는 점점 변하고 있다. 앞으로 더 자주 일어나고 더 크게 번질 것이다. 한반도의 봄이 고온·건조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산불도 산이 높은데다 강한 바람, 건조한 공기, 높은 기온 등 악조건 탓에 더 크게 번졌다. 경북 의성 산불이 안동을 거쳐 영덕으로 확산하는 데 고작 한나절밖에 걸리지 않았다. 빠르게 번지는 불은 인력과 장비만으로는 끄기 어렵다.

 

앞으로 산불은 이전과 달리 많은 피해를 낼 수 있다. 국토의 60%가 산지인 우리나라는 이상기후까지 겹치며 거의 해마다 큰 산불이 난다. 2017년 강릉‧삼척 산불은 4일간 1천여ha를, 2022년 울진‧삼척 산불은 213시간 동안 1만 6천여 ha를 태웠다. 

 

꼭 2년 전인 4월 2일 같은 날 홍성과 금산 대전 등 충청 지방에서도 대형 산불이 나서 사흘째 되어서야 껐다. 홍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피해 면적이 1천 3백여 ha에 이르렀다. 금산에서 일어난 산불이 대전까지 번져 이틀 넘게 9백 ha를 태웠다. 산불은 그 자체로도 큰 피해를 주지만 민심에도 영향을 미친다.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오래전 가야산에서 해마다 산불이 일어나 별별 소문이 돌았고 원인을 찾고 예방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산불 발생 원인은 입산자나 성묘객 실화가 34%로 가장 많고 논밭 두렁 태우기와 쓰레기 소각이 24%, 담뱃불 실화 7%, 건축물 화재 6%, 불장난 등 기타 29%로 나타났다. 이번 영남 지역 참화는 라이터를 켠 성묘객, 예초기 불티를 방치한 작업자 등 기본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의 실수에서 비롯됐다는데 도대체 그들의 의식은 무엇인지를 묻게 한다. 

 

조심만 하면 예방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행정과 소방 당국에서 깃발을 꽂고 방송하고 산림 감시원을 배치하여 예방과 계도 활동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사람들이 주의하고 조심하여야 한다. 애써 가꾼 숲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고 이를 회복하려면 최소 20년에서 수백 년이 걸린다고 한다. 옛날에는 솔가지 하나만 꺾어도 엄한 처벌을 받았다. 농촌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은 산림간수였다. 그런 엄중한 단속과 함께 대대적 나무 심기, 연료전환으로 지금의 푸른 산, 울창한 숲을 가꿀 수 있었다.

 

산불 발생과 진화 상황 보도에「서산 영덕고속도로」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비록 재난 상황이지만 ‘서산’이라는 말에 눈, 귀가 쏠렸다. 서해안 서산에서 동해안인 경북 영덕까지 고속도로로 연결된 것이다. 대게로 유명한 바로 그 영덕이다.

 

도로는 단순히 사람과 물자를 운반하게 하는 시설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을 오가게 하고 생각을 소통하며 문명을 전파하고 공유하게 한다. 도로는 사람으로 치면 혈맥과도 같다. 서산 영덕고속도로는 우리나라 허리를 가로질러 서해와 동해를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다. 도로라는 매개체로 동서가 연결되는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교통량이 늘어날수록 ‘서산 영덕’소리를 자주 듣게 될 것이다. 

 

비록 지리적으로는 멀더라도 도로이름을 함께 쓰는 관계다. 친구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처럼 위로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면 싶다. 서해안 기름유출사고를 당했을 때 서산에도 자원봉사자를 비롯한 물심양면의 도움을 받았다. 이런 고마움을 이번에 갚았으면 한다. 모든 피해지역에 지원의 손길을 펼쳐야 하는데, 고속도로 명칭에 함께 이름이 들어간 영덕을 자매결연 맺은 듯 여기고 위로한다면 더욱 뜻이 깊을 것 같다. 

태그

전체댓글 0

  • 69811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서산~영덕 고속도로의 종점, ‘영덕’을 위로하자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