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화학산업의 중심인 대산석유화학단지는 오랜 기간 국가 경제와 충청남도 지역 경제를 이끌어온 핵심 축이었다. 연간 수조 원대의 국세와 지방세를 납부하며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수년간 이 거대한 산업 단지에서 울려 퍼지는 위기의 경고음은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대산단지의 조세 납부 실적은 급격히 감소하며, 이는 2024년 내국세가 전년 대비 35% 이상 줄어든 3조 2,750억 원에 그친 현실을 통해 석유화학산업 전반의 구조적 변화와 글로벌 시장의 도전 과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단지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석유화학산업 전반에 대한 경고이자 근본적 대응을 촉구하는 신호로 읽혀야 한다.
대산단지의 국세 납부는 2020년 4조 1,197억 원에서 2024년 4조 5,258억 원으로 소폭 증가한 듯 보이지만, 이는 관세 증가에 따른 착시 효과에 불과하다. 내국세 납부는 같은 기간 동안 급격히 감소해 석유화학산업의 실적 악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특히 2024년 내국세는 전년 대비 35% 이상 감소한 3조 2,750억 원에 그쳤으며, 지방세 납부 역시 2023년 665억 원에서 2024년 291억 원으로 급감하여 지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경기 둔화, 석유화학 제품의 글로벌 수요 감소, 유가 하락 등 복합적인 요인이 결합된 결과를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경기 변동의 문제라면 보다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파급 효과를 가질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석유화학산업 전반이 직면한 구조적 전환을 요구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대산단지가 처한 위기의 핵심은 글로벌 환경 변화와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직면한 도전에 있다.
첫째, 글로벌 공급 과잉이 심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2023년 석유화학 생산 능력을 전년 대비 15% 증가시켰으며, 중동 지역에서는 새로운 대규모 생산 설비가 추가로 가동을 시작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석유화학 제품의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으며, 이는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환경 규제의 강화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탄소중립 정책과 플라스틱 사용 제한은 석유화학산업이 기존의 고정 관념을 탈피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셋째, 유가 변동성의 확대 역시 주요 도전 과제다. 유가 하락은 생산 원가를 낮추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판매 단가를 하락시켜 기업의 수익성을 크게 악화시켰다. 이러한 글로벌 및 국내적 요인은 대산단지를 비롯한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 대산석유화학단지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대산단지를 ‘산업 위기 선제 대응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금융 지원, 세제 혜택, 기술 개발 촉진 등 종합적인 정책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단지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수 석유화학단지는 2022년 산업 위기 선제 대응지역으로 지정된 후 정부의 금융 지원으로 시설 개선에 성공했고, 울산은 기술 개발 지원을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량을 20% 이상 증가시킨 바 있다.
여수와 울산 석유화학단지의 사례는 이러한 지정이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대산단지도 이러한 선제적 대응을 통해 장기적인 산업 구조 전환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재도약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인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석유화학산업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인 구조 개편이 필수적이다.
첫째, 저탄소 공정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혁신 기술을 통해 글로벌 환경 규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한 화학 기업은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저탄소 공정 기술 개발에 성공하여 연간 탄소 배출량을 30% 이상 줄였으며, 독일의 주요 석유화학 기업은 수소 기반 생산 공정을 도입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저탄소 공정 기술이 미래 산업 경쟁력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환경 보호 차원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 될 것이다.
둘째,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집중해야 한다. 바이오 기반 화학제품 및 재활용 가능한 소재 개발에 대한 투자는 석유화학산업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기존의 공급 과잉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셋째, 산업-지역-정부 간 협력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산업계와 지역 사회, 정부가 긴밀히 협력하여 정책적, 재정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와 산업의 동반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대산단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지역 주민과 기업의 목소리를 수렴하여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며, 지역 사회는 산업 전환의 동반자로서 협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수 지역에서는 주민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산업 재편 과정에서 환경 보호와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달성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협력은 지역 사회의 신뢰를 얻고, 효과적인 지원 정책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이 결합될 때 대산단지는 단순히 위기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 글로벌 석유화학산업의 선도자로 다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대산단지의 조세 감소는 단순한 경제 지표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 석유화학산업의 구조적 전환을 요구하는 경고음이자,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변화의 기로를 보여준다. 산업, 정부, 지역 사회가 함께 협력하여 대산석유화학단지가 다시 한 번 국가 경제의 중추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