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2(목)

단풍나무 아래에서

김풍배 칼럼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4.11.27 00:04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김풍배.jpg
김풍배 본지 칼럼리스트

뒤늦게 찾아온 가을, 나무들은 서둘러 단풍을 만듭니다. 울긋불긋 색칠한 단풍잎이 뒷산을 수채화처럼 수놓고 있습니다. 색채에 홀려 뒷산을 오릅니다. 곱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에서 불타는 단풍잎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람도 없는데 빨간 나뭇잎 하나가 뱅그르르 돌며 떨어집니다. 단풍잎도 나이 따라 느낌도 다릅니다. 젊어서는 그저 곱고 아름답게만 느꼈는데 나이가 드니 죽음도 보였습니다. 

 

머지않아 저 곱던 단풍잎은 다 떨어지고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흔들거리며 외롭게 추운 겨울을 보내겠지요. 나무를 떠난 나뭇잎은 빛이 바래고 가랑잎 되어 결국 흙으로 돌아가겠지요.

 

‘나이가 든다는 게 화가 나’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가수 김충훈이 부른 노래입니다. 지나간 시간이 아쉽고, 늙어진다는 게 창피한 일도 아닌데 서글프고, 고독을 달래주던 친구도 하나둘 떠나서 화가 난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아픈 곳도 많고, 친구들도 사라지고 오라는데도 없어 고독을 친구 삼아 혼자일 때가 많습니다. 디지털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 시대인데, 아직도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사는 문명 낙오자의 삶도 고단합니다. 과거에 자랑했던 생활 지식은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고, 사소한 예매도 주문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 있습니다.

 

또 한 잎 떨어집니다. 너울너울 돌면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마치 춤을 추는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슬프게 떠나는 게 아닙니다. 생각을 고쳐먹으니, 단풍잎이 춤으로 보였습니다. 봄부터 한여름까지 푸르게 한 생을 멋지게 끝내고 곱게 물들고 가는데 슬플 게 무에 있을까요?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때로 불편하지만, 슬프지는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즐겁고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기댈 곳이 있습니다.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문학을 좋아하니 책도 많이 오고 모임도 많아 늘 탁상 달력엔 일정표로 가득합니다. 더구나 내 곁엔 여러 가지 악기가 있어 혼자 있어도 즐겁습니다. 몇 가지가 있나 세어보았습니다. 아코디언, 미니 키보드, 오카리나, 리코더, 실로폰, 멜로디언, 하모니카 13개. 실력은 형편없습니다. 정식으로 배워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혼자 즐기기엔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악기도 사람처럼 그 맛과 멋이 다릅니다. 어느 건 여자처럼 가늘고 여리지만,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어느 건 남자처럼 웅장하지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안겨줍니다. 그러니 어느 것 하나에 만족하겠습니까? 그래서 자꾸 다른 것에 눈독을 들이게 됩니다.

 

올해 5월엔 클라리넷을 장만했습니다. 10년 만에 꿈을 이뤘고 그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어느 악기나 마찬가지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에 5만 원의 거금을 내고 다섯 번 기초를 배운 후 늘 내 방식대로 혼자 연습하여 6개월 만에 내가 좋아하는 찬송가는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년의 하루하루는 참으로 소중합니다. 하루를 보낸다는 건 남은 날의 하루가 줄어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은 날의 가장 젊은 날은 바로 오늘이란 말이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란 말도 있습니다. 나뭇잎이 팔랑팔랑 춤추며 내려오는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년의 세월을 춤추며 살라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오래 쓰면 기계도 낡아지는데/사람인들 별수 있겠소?//큰아이 이름도/생각나지 않을 때도 있고/왼손에 옮겨 잡고도 곧잘 잊어버리오//대낮에도 희미한 물안개 피어오르고/빠진 이빨 사이로 /참말도 제멋대로 튀어나오고/약이 밥인지/밥이 약인지/깨어나면 습관처럼 찾는 약봉지//그래도 더러는/ 좋아진 것도 있다오//욱하던 성깔 잠재워지고/종지 같은 마음 대접 같아졌소/하루하루 산다는 거 /행복하고 감사하고/시루떡 같던 욕심/새털처럼 가벼워지오//나이가 들어도 늙고 싶지는 않아/머리엔 억새꽃 피어도/마음은 목화솜 닮아가고/얼굴엔 파도가 일렁여도/영혼은 흰 구름 닮아가오//그렇다고 /행여 따라오지는 마소/석양 노을 제아무리 곱다고 해도/호젓한 귀가는 언제나 쓸쓸하다오.

 

필자의 졸작 ‘늙어서 좋아지는 것들’이란 시(詩)의 전문입니다. 곱게 물든 단풍잎 하나 주워 들고 내려왔습니다.

태그

전체댓글 0

  • 83474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단풍나무 아래에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