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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의 타락과 국민의 신뢰, 변화가 절실하다
    최근 정치권에서 ‘탄핵’과 ‘특검’이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을 보며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일부 정당은 자당 국회의원 수사검사 탄핵과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고 있으며, 무분별한 특별검사 도입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탄핵과 특검은 민주주의의 최후 수단으로, 신중하고 중대한 절차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정치 도구처럼 사용되는 현상을 보면서 심각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탄핵과 특검의 남용은 정치적 안정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 탄핵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공직자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하면, 정치인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심화될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도 크게 떨어질 것이다. 이는 정치적 불안정성을 초래하고, 국정 운영의 연속성을 해치며, 정책의 일관성이 사라지고, 장기적인 국가 발전에 심각한 저해 요소가 될 것이다. 특검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특검 도입은 철저히 공정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압박이나 정쟁의 수단으로 사용되면, 사법 체계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훼손될 위험이 크다. 자당 국회의원에 대한 수사검사를 탄핵하려는 시도는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이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사부와 입법부 간의 긴장을 고조시킬 위험 또한 크다. 탄핵과 특검의 빈번한 사용은 국민들의 정치적 피로도를 가중시키고,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해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과 견해가 존중받고, 합리적인 토론과 타협을 통해 발전하는 체제다. 그러나 탄핵과 특검이 정치적 도구로 변질되면, 건설적인 논의와 타협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정치적 극단주의가 강화될 우려가 있다. 이는 국민들을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지게 만들고, 결국 민주주의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정치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응급 헬기 이송 사건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재명 대표가 지난 1월 2일 피습을 당한 후 부산에서 서울로 응급 헬기를 타고 이송된 사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명백히 규정을 위반한 특혜”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 특혜의 수혜자인 이재명 대표와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천준호 의원은 공직자 행동강령의 적용 범위 밖에 있다는 이유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대신 이들의 이송을 도왔던 의료진과 소방대원들만이 징계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상황은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정치인들이 자신을 수사한 검사에 대한 탄핵과 특검을 외치는 모습은 국민들의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저해할 뿐이다. 그들의 행동은 정치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국민의 분열을 초래한다. 정치인은 국민을 대표하여 공정하고 정의롭게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특혜를 당연시하며 법을 위반하는 행태는 국민의 신뢰를 배반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에게도 엄격한 공직자 행동강령을 적용하여, 그들의 행동을 철저히 감시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정치권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의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정치의 타락은 단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공직자의 특권 남용과 그로 인한 불공정한 처벌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먼저 변해야 한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모든 공직자들이 법과 규정을 준수하며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한 걸음 물러서서, 탄핵과 특검이라는 강력한 수단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할 때다.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며,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탄핵과 특검의 남용을 경계해야 한다. 탄핵과 특검이 일상이 되는 정치 환경을 지양하고,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국민이 나서야 할 때다. 정치인의 특혜와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해야 한다. 정치권의 부패와 특권을 근절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함께 힘을 모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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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30
  • 시(詩) 같은 말
    우연히 길에서 K 전무를 만났습니다. 이십여 년 전 친하게 지냈던 동료였습니다. 오래전에 두어 번 만났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습니다. 다만, 소문에 큰 수술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니 참으로 반가웠지만, 수술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요즘 건강은 좀 어때?”라고 물었습니다. 아파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살도 많이 빠지고 더 늙어 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K는 “그냥” 하고 얼버무렸습니다. 퇴직 후에 했던 ‘부동산 중개소 일’은 잘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도 “그냥”하고 대답했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가는 길이었기에 후일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가 했던 ‘그냥’이란 말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에도 ‘그냥’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당진시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S 목사님의 자제분이 식당을 개업했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잘되느냐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그냥’이란 말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사전을 들춰봤습니다. 명사와 부사로 사용되며 ‘변함없이 그 모양으로, 그대로 줄곧’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K 전무에게서 들었던 ‘그냥’과 S 목사님의 ‘그냥’은 달리 들렸습니다. K 전무가 했던 ‘그냥’은 억지로 힘들게 버티고 있다는 말로 들렸고 S 목사님의 ‘그냥’은 잘되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냥’이란 말을 자주 씁니다. 하지만, 꼭 사전에 나와 있는 뜻대로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현상 유지보다 훨씬 잘되어도 ‘그냥’이고 지금은 나쁘지만 앞으로 좋아질 거란 기대감도 ‘그냥’입니다. 문득 ‘그냥’이란 말이 시(詩)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는 읽는 사람마다 그 느낌이 다르지 않은가요? 생각해 보면 시(詩) 같은 말이 많이 있습니다. 20여 년 전에 어느 충청도 출신 개그맨이 ‘서산 사람’ 이야기하는 걸 라디오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외지 사람 하나가 서산 시골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원두막 근처 도로에서 참외를 놓고 파는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얼마냐?”라고 물으니“갈량헤서 주슈”. ‘아무래도 시골이니 싸겠지’ 짐작하고 열 개 정도 담아 5천 원짜리 지폐 하나 주었더니“됐슈”하며 손을 내 졌더라고 했습니다. 잘못 생각했다 싶어 돈을 더 주어도 ‘됐슈’하며 팔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갈량을 잘못해서 자존심이 상했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이 참외 열 개를 담아 만 원을 주면서 천 원짜리 몇 장을 더 주려고 기다리는데 “됐슈”하며 한 개 더 담아주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됐슈’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는 지금 부춘산 중턱에 시화 목에 새겨 세워져 있습니다. ‘스산 양반/스산 촌놈 사는 동네에/“됐슈”란 사투리 한마디//처음 온 외지 사람 헷갈린다는/스산 사투리 “됐슈~”/마음에 흡족할 때도 “됐슈~”/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됐슈~”//黑白, 上下, 高低, 長短/세상일 /어찌 한쪽으로만 치기 울까?//양날 끝에 서서/ 죽자 사자 하는 세상인심 무서워/오늘도/ 스산 양반, 스산 촌놈/“됐슈” “됐슈” 연발한다//“됐슈~”.’ 그런가 하면 정말로 시 같은 말이 또 있습니다. ‘거시기’란 말입니다. 탤런트 겸 가수인 김성환 배우는 자기 고향에선 ‘거시기’ 한마디면 다 알아듣는다고 했습니다. 필자의 세 번째 시집 「바람 소리」에 들어 있는 시 ‘詩 같은 말’이 있습니다 ‘얼른 떠오르지 않을 때/ 바로 말하기 곤란할 때/대신하여 쓰는 말 거시기//거시기 속에/할 말 다 들어 있으니/얼마나 詩 같은 말이냐?//입이 있다 하여/어찌 할 말 다 하고/ 쓰고 싶다 하여/맘대로 다 쓰랴//저 잘난 맛/거식할 때 더러 있으니/ 그저 거식하게 살아가련다.’ 말 한마디로 수많은 말을 대신하는 ‘거시기’라는 말은 정말로 시 같은 말이 아닌가요? 말 한마디가 이렇듯 뜻도 다르고 느낌도 다릅니다. 옛말에 ‘어’ 다르고 ‘아’ 다르다고 했습니다. 입이 있다고 하여 어찌 말을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TV에 나오는 일부 정치인들 막말을 들으며 귀를 씻습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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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3
  • 조선시대에도 ‘서산 육쪽 마늘’이 있었나?
    「연산군 10년(1504년)에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진상한 마늘에 대해 비교한 기사가 있다. 연산군은 당시 전라 감사 김영정이 진상한 마늘을 내려 보내며 이르기를 “충청도에서 진상한 것은 잎이 길고 새로 캔 것 같으나 지금 전라도에서 진상한 것은 겨우 순이 나고 또 썩어 진상하기에 합당하지 않으니, 생마늘을 그대로 그려 전라 감사에게 유시하기를 “지금 마늘 길이가 이와 같은데 겨우 순이 난 것을 진상하였으니, 어쩐 일이냐? 도회관(都會官) 및 진상한 각 고을을 아울러 조사해서 급히 아뢰도록 하라.”고 하명하고 있다.(연산군일기 권52, 연산군 10년 4월 계묘조). 오늘날 충남 서산의 육쪽 마늘이 유명한데, 충청도의 마늘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그 명성이 자자했나 보다.」 이 칼럼의 제목과 위에 인용한 글은 2003년 공주시와 충남발전연구원이 함께 펴낸 『충청감영 400년』에 수록된 내용이다. 조정에서는 충청도 마늘의 우수성을 인정하였는데 실록에는 비록 ‘서산’을 명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충남발전연구원에서는 좋은 품질의 마늘 주산지를 서산으로 명정한 것이다. 임금에게 진상하는 물건은 조선팔도의 특산물 가운데 가장 귀하고 품질이나 가치가 가장 뛰어난 것 일진데, 서산 마늘을 진상품으로 보는 연구 결과는 이름값에 확신을 갖게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펴낸 『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1832년(순조 32) 7월 21일 ‘조선왕조실록’에는 영국의 로드 애머스트(Lord Amherst) 호가 “서산 간월도 앞바다로부터 창리 포구에 와서 소 2두, 돼지 4구(口), 닭 80척, 절인 물고기 4담, 갖가지 채소 20근, 생강 20근, 파 뿌리 20근, 고추 10근과 함께 마늘 뿌리 20근을 받았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서산 육쪽 마늘이 조선 시대의 교역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라는 내용도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역사적으로나 지금도 서산 육쪽 마늘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 유성전통시장에서도 ‘서산 마늘’이라고 팻말을 내놓고 판매한다. 눈으로 보기에는 ‘과연 서산 마늘일까?’하는 의문이 가지만 서산마늘의 성가에 기대보려는 마음이 읽힌다. 품질이 우수하기에 얻을 수 있는 유명세다. 잘 알려진 대로 단군 신화에 마늘이 나온다. 곰이 사람이 되려면 신성한 효능이 있어야하는데 마늘과 쑥이 나쁜 기운을 쫓는 기운이 있고, 힘의 원천이라는 믿음이 신화의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흡혈귀 드라큘라가 싫어한 것은 십자가와 마늘이었을 만큼 서양에서도 마늘을 신비한 약초로 여겼다. 루마니아 지방에서는 부활절 새벽에 마늘로 십자가를 만들어 집안 곳곳에 마늘을 놓아두는 풍습은 마늘에 나쁜 기운을 쫓아내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늘은 강한 냄새를 제외하고는 100가지 이로움이 있다고 하여 일해백리(一害百利)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마늘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밝혀져 참살이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을 통해 ‘세계 10대 건강식품’을 발표한바 있는데 여기에는 마늘이 포함돼 있다. 마늘은 음식이나 김치에는 빠질 수 없는 양념이다. 날 것으로 또는 구워서 먹을 수 있고 장아찌를 만들어 입맛을 돋우기도 한다. 꿀에 재어두고 먹거나 흑마늘 등으로 가공해서 이용해도 좋다. 마늘 성분으로 영양제를 만들기도 하니 그 용도가 한둘이 아니다. 서산이 마늘의 주산지가 된 것은 토질과 기후가 알맞기 때문이다. 좋은 품종을 유지하고 축적된 재배 기술도 다른 지역에서 따를 수 없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서산의 주 중목인 한지형 마늘 재배면적이 점점 줄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인력 부족과 인건비 상승, 저장이 어렵고 기후변화에 따른 온난화가 주요 이유일 것으로 판단된다. 더욱이 소비자들은 난지형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부담을 갖기도 한다. 대책으로 노동력을 줄일 수 있는 농기계와 생분해 필름 보급, 건조 저장시설, 건가 시설 등 지원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죽방멸치가 일반멸치에 비하여 가격이 3~4배 이상 높은 예에서 보듯 고소득층을 겨냥한 고급화 전략으로 나가는 방법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여름의 한복판 삼복가운데서도 한 가운데인 중복이다. 예전부터 복날에는 보신탕이나 삼계탕으로 복달임하면서 기력을 보충했다. 비만을 걱정하고 영양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도 고기가 귀했던 시절의 풍습이 이제는 민속으로 이어오고 있다. 복날 먹는 대표적 음식인 보신탕은 개고기식육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찾는 사람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그 자리를 삼계탕이 차지하고 염소탕이 메꾸고 있다. 염소탕 가격이 워낙 비싸지고 보니 삼계탕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에 마늘 주산지인 서산에서는 삼계탕에 마늘을 듬뿍 넣고 ‘마늘 삼계탕’ 또는 ‘산삼계탕(蒜蔘鷄湯)’으로 불렀으면 한다. 산삼계탕이라면 혹시 산삼을 넣은 삼계탕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어쨌든 서산 마늘의 성가를 높이고 은연중 마늘 수요를 늘릴 수 있으라고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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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3
  • 어깨 관절의 근육파열
    어깨 관절은 우리 몸에서 가장 넓은 운동범위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4개의 힘줄-견갑하건, 극상건, 극하건, 소원건에 의해 가능하며 이 힘줄을 통틀어 회전근개라고 한다. 이 4개의 힘줄은 다른 두 개의 뼈(상완골 두와 견갑골의 견봉)사이를 바짝 붙어서 지나가므로 여유 공간이 1mm이하로 좁다. 이렇게 여유 공간이 좁기 때문에 두 뼈 사이가 반복적으로 좁아지는 상태가 지속되면 공간에 문제가 발생하여 통증이 생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관절운동이 제한되기도 하며 더욱 지속되면 회전근개의 부분파열을 지나서 완전 파열에 이를 수 있다. 회전근개의 파열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대체적으로 회전근개 자체의 문제에 기인하는 내부적 원인과 주변의 상황을 고려한 외부적 원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 내부적 원인에는 회전근개로 가는 혈액공급이 원활하지 않거나, 힘줄을 구성하는 섬유의 변화 등이 있으며, 외부적 원인으로는 힘줄을 둘러싼 뼈의 모양이 이상하거나 반복적으로 팔을 사용하여 파열되는 경우 등이 있다. 외상으로 어깨를 부딪치거나 팔을 잘 못 짚고 넘어지면서 파열이 될 수 있으나 대부분은 다친 경험이 없이 발견된다. 회전근개 파열의 증상은 어깨의 통증이며 흔히 팔을 들어 올릴 때와 누운 자세에서 잘 때 통증이 심해진다. 60도에서 120도 팔을 벌린 위치에서 통증이 심해지고 오히려 더 들어 올리면 통증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운동이나 자세를 불문하고 지속적인 통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흔히 통증은 어깨의 앞이나 옆 부분에 나타나고 방사되어 팔꿈치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있으며 목을 지나 머리까지도 통증이 가는 경우가 있다. 어깨관절의 운동범위가 제한되기도 하는데 초기에 내회전이 제한되어 열중쉬어 자세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파열된 힘줄로 인해 어깨를 회전시킬 때 소리가 나기도하며 팔을 들어 올릴 때 힘이 줄어든 것을 느끼다가 완전히 파열된 경우 팔을 아예 들어 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회전근개 파열의 진단은 여러 가지 진찰을 통해 의심할 수 있으며 X-ray, 초음파, MRI 등의 검사가 정확한 진단에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회전근개 부분 파열의 일차적 치료는 비수술적 치료를 시행한다. 비수술적 치료에는 힘줄의 기능회복을 위해 시행하는 관절운동 및 어깨 주위근육의 강화운동, 물리치료, 주사치료, 약물치료 등이 있다. 부분 파열의 경우 비수술적 치료에 통증 호전이 되어도 파열된 부분은 대부분 잔류한다. 그러므로 추후 재발이나 파열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심한 노동이나 운동을 피하고 특히, 낙상을 조심해야 한다. 회전근개의 완전파열의 경우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파열된 힘줄을 봉합하는 방법으로 피부절개를 통한 개방적 봉합술 및 내시경을 이용한 관절경적 봉합술이 있으며 파열된 상태로 오랜 시간 방치된 경우 힘줄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에는 인공관절 치환술이 필요할 수 있다. 수술 후에는 봉합한 힘줄이 다시 끊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어깨를 30도 정도로 옆으로 벌리는 보조기 착용이 필요하며 초기에는 수동적인 운동으로, 수술 후 4~6주가 지난 후에는 보조기 제거 후 점차 능동적으로 재활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김만경 서산의료원 정형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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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3
  • 친절의 추억
    책상서랍을 정리하다가 빛바랜 봉투를 발견했습니다. 금방 생각이 났습니다. ‘충청지방우정청 우정계획과’에서 보낸 편지였습니다. 봉투를 열었습니다. 감사인사장과 스마트폰용 미니선풍기가 들어있습니다. 2017년 6월이니 벌써 7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당시의 일들이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한국공무원문학은 대전에 본부가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대전이 국토의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해 공무원문학 여름호를 발송하려고 대전에 갔었습니다. 전국의 회원들과 각 도서관과 관계기관에 발송하려면 그 작업이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대전 시내 거주 회원들이 수고하고 있지만, 몇몇 임원들도 손을 보태야 했습니다. 작업이 늦어져 우체국 업무가 거의 끝나갈 무렵 둔산동에 있는 우체국에 도착했습니다. 우편물을 싣고 간 차량이 막 도착할 때는 마감 시간 5여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우편물 숫자만 세어서 넘긴다면 크게 문제가 될 것 없었으나 다량의 우편물은 할인 혜택이 있어 따로 서류를 작성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가장 왼쪽 창구에 앉아있던 여직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오더니 구비서류 작성을 도와주어 손쉽게 발송할 수 있었습니다. 늦은 고객이라 다소 짜증 낼 만도 했지만, 시종 웃는 낯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걱정하고 갔던 일행 모두 그 직원의 친절에 한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나왔습니다. 여직원 앞에 놓인 명패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 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고마운 마음을 담아 둔산우체국장에게 ‘공무원 문학’ 여름호에 편지를 동봉하여 보냈습니다. 그 편지의 답신이 바로 이 봉투였습니다. 충청지방우정청장에게 편지를 받은 날 오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바로 대전우정청장이었습니다. 마침 우정청에서 고객-DAY 이벤트 기간이라 했습니다. 친절한 직원을 추천해주어 고맙다는 인사와 전 직원 모임에서 필자가 보낸 편지를 소개했다면서 해당 직원에게도 포상이 있을 거란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봉투 안에는 초록색 OMNI MINI FAN 스마트폰용 미니 선풍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었지만, 당시엔 처음 보는 물건이었습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봉투 속에 넣어두었습니다. 7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그 여직원의 친절은 잊히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그에게는 아주 사소한 일상의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전혀 기억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친절을 받은 필자는 당시의 상황까지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득 남문우 변호사님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한번은 사모님이 밖에 갔다 오더니 어떤 70대 할머니가 사모님에게 ‘남 변호사님이 고마워서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라고 하더랍니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남 변호사님이 홍성지청 검사로 있을 때 점심시간에 식당에 점심을 주문하여 자기가 밥 쟁반을 머리에 이고 검사실에 갔는데 검사님이 직원에게“야! 저 아가씨 키 줄어든다. 빨리 내려 드려라” 지시하여 무척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사모님과 같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그 부인을 만났는데 남 변호사님이 “나는 아무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50년이 지난 사소한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자기가 식당 종업원으로 있을 때 아무도 자기를 사람대접하지 않았는데 높으신 검사님께서 사람대접해 주는 것이 고마워서 울기까지 하였는데 그것을 어찌 잊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더랍니다. 친절은 큰 힘이 들거나 많은 돈이 드는 게 아닙니다. 따뜻한 마음 하나면 됩니다. 잔잔한 미소, 정다운 말 한마디, 사소한 손길 하나가 기쁨과 위로를 주며 희망과 행복을 안겨줍니다. 친절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되받는 메아리입니다. 전염성이 있습니다. 친절한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누구에겐가 친절의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요?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요? 오늘 하루, 친절의 주인공이 되어보심은 어떨까요. 이제는 잭의 규격이 달라 아무 소용없는 미니선풍기. 친절의 추억을 보물처럼 다시 봉투에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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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6
  •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한여름 태양보다 더 뜨거웠습니다. 객석을 가득 채운 홀 안의 시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 열기는 바로 미래의 서산을 그려내는 이완섭 서산시장이 뜨거운 열정으로부터 비롯하였습니다. 그는 웅변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선동이나 화려한 말솜씨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멀지 않아 바로 펼쳐질 꿈같은 그러나 결코 꿈이 아닌 서산의 청사진을 눈앞에 펼쳐 보였습니다. 무엇을 했다는 자랑이 아니라 서산의 푸른 미래를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지난 7월 2일 오후 2시 ‘시정 비전 및 성장거점사업 설명 및 시민 의견 수렴의 자리’가 서산시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렸습니다. 사회는 서산시 홍보대사인 방송인 조영구 씨가 맡았습니다. 그는 전문 MC답게 준비한 영상물과 이완섭 시장의 설명을 토크쇼 형식을 빌려 능숙하게 진행하였습니다. 때로는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고 중간엔 그의 본업을 살려 서너 곡의 노래도 선사하였습니다. 교통은 동맥과 같습니다. 그 동맥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가려고 하는 곳이 바로 서산입니다. 이곳 서산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하늘에서 그 길이 열리고 이런 천혜의 도시를 그는 만들려 하는 것이고 그리고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먼저 뱃길을 열었음을 설명했습니다. 지난 5월에 충청권 최초로 국제크루즈선이 성공적 운행하여 많은 고객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더 다양한 선사와 접촉하여 더 많은 운항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하늘길이 열리고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현재 서산공항 기본계획 수립 용역과 전략환경영향평가가 공동으로 착수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2026년 착공하여 2028년 개항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땅 위 길은 이미 지난해 서산과 영덕 간 고속도로는 착공하여 진행하고 있으며 향후 중부권 동서 횡단 철도, 내포 태안 철도, 대산항 인입 철도, 충청 내륙 철도 등은 이미 대통령 공약사항인 동시에 도지사, 시장 모두의 공약사항임으로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 외에도 시청사 건립, 석남동 일원에 세워질 문화예술 타운, 양대동의 자원회수시설, 톨게이트 경관 개선 등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대각선 횡단보도 같은 시민의 관심 사항도 언급하며 특히 전국 최고 수준의 보훈 수당을 인상하여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과 유족들을 위로하고 그 뜻을 기렸다고 했습니다. 이완섭 시장은 다양한 사업과 계획을 설명하면서 규모와 진행 상황의 각종 수치를 원고도 보지 않고 술술 풀어 설명했습니다. 진행을 맡은 조영구 사회자는 그러한 모습의 시장을 가리켜 천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천재라 해도 그 많은 숫자를 어떻게 다 기억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천재가 아니라 추진하고 있는 사업별로 그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고심하고 있는가를 보여준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써준 원고가 아니라 직접 발로 뛰고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귀를 기울이고 있던 시민들은 그걸 느끼면서 자신도 모르게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습니다.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서산의 미래를 눈으로 확인하며 공감하여 자연스럽게 두 손 모아 손뼉을 쳤습니다. 호수공원에 조성될 초록광장을 설명할 때는 다소 격앙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부 반대하는 분들의 주장에 안타까움이 은연중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100% 찬성이 어디 있습니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어쩌면 일부의 반대는 당연한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반대는 있었습니다. 경부 고속도로도 그랬고 제주 강정 마을 해군기지, 그리고 청선산 터널도 그랬습니다. 그때는 그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는 듯했습니다. 비슷한 주차 공간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푸른 광장이 생긴다면 오히려 ‘환경친화적 사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유사시 대피소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일석삼조가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호수공원 주차장 위에 세운 조감도를 보면서 전에 보았던 프랑스 안시 호수의 푸른 잔디에 삼삼오오 모여 즐기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땅길, 하늘길, 바닷길이 열린 사통팔달의 도시에서 산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요? 사회기반시설과 사회간접자본의 확대는 성장 거점에 필수 항목입니다. 거기에 문화로 먹거리를 삼는다면 대한민국 최고의 살기 좋은 명품도시가 될 것입니다. 용장(勇將) 밑에 약졸(弱卒) 없고 약장(弱將) 밑에 용졸(勇卒)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마리의 사자가 이끄는 일백 마리의 양 떼는 한 마리의 양이 지휘하는 일백 마리의 사자 떼를 이긴다는 말도 있습니다. 날개를 펴고 웅비하려는 서산의 모습을 그려보며 설명회 내내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목사·시인·수필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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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9
  • 유방암 검진
    현재 우리나라에서 여성암 발생률 1위를 차지하는 암은 유방암이다. 유방암 발생이 증가함에 따라 유방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유방암 검진을 언제, 어떤 간격으로,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듯 하다. 한국 유방암협회에서의 유방암 검진 지침은 ▷30세 이상에서는 매월 유방 자가 검진 ▷35세 이상에서는 2년 간격으로 의사에 의한 임상 검진 ▷40세 이상에서는 1-2년 간격으로 임상 검진과 유방 촬영술을 시행하는 것이다. 유방 자가 검진은 생리가 끝나고 3-5일 후에 멍울이 만져지는지, 유두 함몰이 있는지, 오렌지 껍질처럼 변한 부분이 있는지, 유두 분비가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설명을 들어도 제대로 하는 경우가 드문데다가 유방의 크기, 흉곽의 모양, 유방 조직의 밀도 등의 문제로 제대로 검진을 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뭔가 만져진다며 내원하는 여성들의 말을 들어보면 본인이 멍울을 느낀 경우는 많지 않고, 대개는 남편, 남자 친구, 목욕탕 때밀이 분이 뭔가 만져진다고 하여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자가 검진의 효용성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볼 수 있다. 유방암 검진을 위한 검사에는 유방 촬영술, 유방 초음파, 유방 MRI등이 있다. 유방 촬영술은 보통 40세 이후부터 국가 암검진 사업으로 2년마다 시행한다. 유방 촬영술은 유방암 검사의 기본 항목이며, 유방 촬영 후 판독 소견을 보면 대개 세가지 정도의 소견으로 나타난다. 치밀 유방은 유선 조직이 많음을 의미하며, X-ray beam이 치밀 유방을 통과할 수가 없어서 사진에서는 그냥 하얗게 보이게 되어 유방에 멍울이 있어도 사진상에 나타나지 않는다. 동양 여성들은 거의 모두 치밀 유방 소견을 보이기 때문에 유방 촬영만으로는 유방 내 멍울의 유무를 판단하기 어렵다. 석회화: 석회화는 양성 석회화와 악성 석회화가 있다. 거의 대부분은 양성 석회화 소견이지만 드물게 조기 형태의 유방암에서는 악성 석회화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양성 석회화는 악성 석회화보다 크기가 크고, 둥글며 가운데 부분이 약간 어둡다. 악성 석회화는 작고, 모양이 일정치 않고, 숫자가 많으며 다양한 패턴으로 분포한다. 악성 석회화가 의심되는 경우 유방 초음파를 시행해서 멍울이 동반되었으면 조직 검사를 하고, 초음파상에서 혹이 보이지는 않으나 악성이 의심되는 경우엔 유방 촬영 장비를 이용해서 바늘을 석회화 위치에 넣고 간단한 수술을 통해 조직을 얻어서 검사를 하게 된다. 비대칭: 양측 유방 모양이 대칭적이지 않은 국소 음영이 있다는 뜻으로 간혹 유방 초음파에서 멍울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거의 대부분의 유방암은 멍울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동양 여성들은 치밀 유방이라 유방 촬영에서 멍울이 보이는 경우가 많지 않으며 또한 치밀 유방이 아니라고 해도 흉곽 모양이나 멍울의 깊이, 위치에 따라 유방 촬영상에서 멍울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동양 여성들의 유방 검진에는 꼭 유방 초음파가 동반되어야 한다. 유방암의 위험 요인으로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젠과 유방암 가족력이 가장 확실하게 알려져 있다. 에스트로젠에 많이 노출될수록 유방암의 위험도는 높아진다. 따라서 초경이 빠르거나, 폐경이 늦은 경우, 비만 등은 에스트로젠에 노출되는 시간을 늘여 유방암의 위험도를 높인다. 또 유방암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도 유방암의 위험도는 올라간다.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가족인 유방암 환자의 나이가 젊을수록, 유방암 환자와 유전적으로 가까울수록, 가족 내에 유방암 환자가 많을수록 유방암의 위험도는 올라간다. 최근 들어 영양섭취 수준이 높아지면서 초경이 빨라지고, 결혼 시기가 늦어지면서 첫 출산의 나이가 점점 올라가는 등 에스트로젠 노출이 많아지면서 유방암 발생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유방암 환자 수도 증가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최근에는 암의 성장 속도가 무척 빨라지는 경향을 보이므로 정기적인 검진은 매우 중요하며 유방암의 위험 요인을 가졌다거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엔 더욱 자주 정기 검진을 시행해야 한다. 유방암의 가족력이 없다거나 유방암의 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여 검진을 망설이는 분도 있다. 그러나 현재 발견되는 대부분의 유방암 환자는 가족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유방암의 위험 요인을 가지지 않은 경우도 많다. 따라서 정기적인 검진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며, 유방암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보다 더 자주 정기검진을 하는 것이 좋으며 갑자기 뭔가 멍울이 느껴진다면, 검진한 지 얼마 안되었더라도 다시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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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9
  • “아! 그 유명한 팔봉산 감자네요”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감자를 소재로 한 글이 두 개가 실렸었다. 하나는 장만영 시인의 ‘감자’다. 「할머니가 보내셨구나/ 이 많은 감자를/ 야. 참 알이 굵기도 하다/ 아버지 주먹만이나 하구나.// 올 같은 가물에/ 어쩌면 이런 감자가 됐을까?/ 할머니는 무슨 재주일까?// 화롯불에 감자를 구우면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후략)」 선생님은 이 시를 읽은 후 “‘이 많은 감자를’보다 ‘할머니가 보내셨구나’를 앞에 쓴 것은, 감자의 양보다도 할머니가 보내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낸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화롯불에 구우면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다’라는 대목에서 “할머니의 사랑과 그리움을 느껴보라”고도 하셨다. 예상대로 시험에 나왔다. 또 하나는 권태응 시인의 ‘감자꽃’이다. 「자주 꽃 핀 건 자주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꽃만 보고도 땅속에 있는 감자가 자주색인지, 하얀 색인지 색깔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재밌는지 그 말을 입에 달고 뛰놀았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강원도 광산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 ‘구름은 흘러도’를 지금 1호 광장에서 홍성방면 신협 부근쯤에 있던 서산극장에서 단체 관람했다. 또래의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왔다. 대부분 가난하고 배가 고팠던 시절, “감자를 얼마나 먹었어? 쌀을 얼마나 먹었어?”라는 대사가 크게 들렸다. 김동인의 단편소설 ‘감자’도 가슴을 무겁게 했다. 가난하지만 정직한 농부의 딸로 바르게 성장한 복녀는 돈에 팔려가 만난 남편 때문에 지독한 가난에 시달린다. 빈민촌에서 허드렛일로 생계를 이어가다 송충이 잡는 일에 나섰고, 감독의 유혹에 빠져 쉽게 돈 버는 일을 한다. 어느 날 감자를 훔치다 들켜서 감자 주인인 왕서방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결국 비극을 맞는다. 곤궁한 처지의 아픈 인생을 상상하다 보면 목에 걸린 찐 감자처럼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여름 방학 때 큰댁에 가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모깃불을 피우면서 죽 둘러앉았다. 대바구니에는 찐 감자와 옥수수가 가득했다. 사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여름밤은 깊어졌다. 감자와 고구마는 같은 듯하지만, 감자는 줄기가 뭉친 것이고 고구마는 뿌리가 뭉쳐 자란 것이라는 것도 아마 그때 들은 것 같다. 감자는 고구마와 함께 대표적인 구황작물이었는데, 지금은 건강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럽에서도 즐겨 먹는다. 독일하면 맥주와 함께 감자가 떠오를 만큼 감자는 독일인의 주식이다. 독일에서 감자를 귀하게 여기고 주식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는 일화가 전해온다. 남미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감자는 먹으면 이상한 병에 걸린다고 외면 받았다. 포로에게 먹이고 가축에게나 주는 사료로 썼다. 그러나 18세기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굶주림을 해결하는 일이었다. 이때 프리드리히 2세가 있었다. 왕은 묘안을 짜냈다. 우선 “감자는 왕실 요리에만 올릴 수 있다.”라면서 자신부터 감자를 먹는데 앞장섰다. 감자밭에 보초를 세워 지키게 하니 호기심을 품은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보초를 두고 지킬 정도라면 대단히 귀한 작물로 인식하고 감자를 달리 보게 되었다. 밤에는 슬쩍 보초를 철수시켰다. 사람들은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감자를 서리해서 먹고 심기 시작했다. 왕이 의도한 대로였다. 사람들은 점점 감자를 주식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왕을 ‘감자 대왕’으로 불렀다. 지금도 사람들이 그의 묘지를 방문할 때는 감자를 올려놓는다고 한다. ‘팔봉산 감자’는 ‘농수산물품질관리법’에 따라 감자 품목가운데서는 처음으로 등록된 지리적 표시제 농산물이고 보니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이는 우량 품종, 알맞은 토양과 재배 기술이 좋은 품질의 감자를 생산한 결과다. 시에서는 ‘고품질 씨감자’를 생산하고자 10년 동안 씨감자 안전 생산 체계를 구축하여 농가에 보급한다고 한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조직배양으로 생산한 무병묘(無病苗)를 수경 재배하여 씨감자 생산자단체에 원종을 공급하고 이를 증식하여 농가에 보급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와 생산자단체, 농민들이 합심 노력함으로써 품질 좋은 감자를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고랭지 씨감자를 구하러 강원도나 공주 유구 동해리까지 다녀야 했는데, 격세지감이다. 아무쪼록 우량 씨감자를 생산하고 재배 기술을 향상시켜 우량 감자의 명성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연륜을 더하는 감자축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하면 더욱 알려질 것이다. 오늘 점심은 팔봉산 기슭에서 자란 감자 몇 알과 우유 한 잔으로 대신했다. 하얀 분이 돋고 포슬포슬하니 보기에 좋고 맛도 구수했다. 시장에서 사 먹던 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지인들에게 보냈더니 “아! 그 유명한 팔봉산 감자.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라는 전화가 왔다. ‘어제 뽀얀 감자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참 즐거운 계절의 맛이었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준 분도 있다. 고향 분들의 땀과 정성, 팔봉산 정경, 가로림만 갯바람까지 전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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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2
  • 정의의 강
    보다가 두어 번 던지는 게 요즘 신문입니다. 온통 비난과 비판의 활자가 지면을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리저리 돌리다가 결국 꺼버리는 게 요즘 TV입니다. 호통과 헐뜯는 모습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안 보고 안 들으면 편할 텐데 그래도 보고 듣게 되니 그래서 더 속상합니다. 저들은 얼마나 깨끗하고 바르게 살기에 저렇게 남을 비난하고 호통치는지. 하도 유명한 사람들이어서 가끔은 그들의 행적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그런데도 참 뻔뻔스럽게 비난하고 혼자만 잘난체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요즘을 흔히 ‘내로남불 시대’라고 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의 준말입니다. 애초에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대변인 시절에 처음으로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요즘처럼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내로남불’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로남불’의 무감각 사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국민대 박규철 교수는 내로남불의 무감각이 널리 퍼졌으면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정의의 강은 썩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독일의 아돌프 아이히만이 사람을 죽일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사람을 죽음에 몰아넣었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무감각이 가져온 결과라는 것입니다. 어느 언론인은 이 시대의 이런 풍조를 대책도 없고 치유책도 없다며 자조했습니다. 그저 갈 데까지 가보라고 탄식을 뱉어냈습니다. 정녕 이 땅에는 정의의 강은 썩고 말았는가? 낙심하며 보던 신문을 던지려다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에 지인이 보내준 모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였습니다. 정치인들의 골치 아픈 이전투구의 기사보다 훨씬 나을 듯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목차를 뒤적이다가 ‘나의 선생님’이란 특집을 발견했습니다. 참으로 따뜻하고 감동적인 스승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습니다. 특히 ‘예수의꽃동네형제회’수사이신 신상현 인고자애병원 의무원장님의 이야기는 먹구름 가득한 마음에 아침 햇살처럼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의과대학생 시절 본과 3학년 임상 실습 시간, 스승 민병석 박사님으로부터 “이 젊은 여성은 가난하고 고아라서 치료 시기를 놓쳐 이렇게 불쌍하게 죽어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앞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혼자 마음속으로 “네, 교수님, 제가 하겠습니다.”라며 대답했고 지금까지 36년간 꽃동네에서 무언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글이었습니다. ‘죄인인 저도 창설자의 가르침인 <나는 너만을 사랑한다. 네가 죄가 있든 없든> 이 말씀에 따라 보잘것없는 종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전 홍성지청장 남문우 변호사님이 소설의 소재로 삼으면 좋겠다며 법률신문에 났던 송종의 전 법제처장의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93세 된 노인이 빌렸던 돈 1억 원을 갚겠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26년 전 큰 사업체를 운영하는 큰 부자였는데 급히 필요하니 돈 1억을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평소 인품을 생각하여 차용증조차 받지 않고 1억 원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런 후 얼마 되지 않아 회사는 망하고 그는 종적을 감췄다고 했습니다. 송종의 처장님은 졸지에 거액을 잃고 힘들 때마다 스승으로부터 배운 여섯 글자로 괴로운 마음을 달랬다고 했습니다. ‘물기거이물추(物旣去而勿追)’재물이 이미 내 손을 떠났거든 이를 다시 찾으려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93세 노인은 1억 원을 갚지 못함이 짐이 되어 평생 괴로워하다가 어찌어찌 마련하여 1억 원을 장만하여 갚았다는 사연이었습니다. 송종익 처장님은 잃었던 돈 1억 원을 각 학교에 나누어 기부하였다고 합니다. 신문을 읽으며, TV를 보며 정의의 강은 썩었다고 생각했다가 이 땅에는 아직도 정의의 강은 흐르고 있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저 잘났다고 큰소리칠 때, 묵묵히 가난한 사람 곁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랑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빚을 갚는 양심. 횡재 같이 찾아온 거금을 가장 좋은 곳에 아낌없이 기부하는 사람들. 그들이 있는 한 이 나라는 아직도 정의의 강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흐르고 있는 정의의 강. 구불구불 산기슭에도, 들꽃 향기 짙은 오솔길에도 흐르고 있을 것입니다.
    • 오피니언
    • 칼럼
    2024-07-02
  • 족보
    얼마 전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모르는 전화이기에 받지 않으려다 하도 오랫동안 울리기에 받았더니 다짜고짜 이름을 확인하더니 주소가 맞느냐고 했습니다. 어디냐고 물었더니 ‘종친회 족보 편찬 회’라면서 족보를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신청한 적도 없고 내용도 몰랐지만, 무조건 보내준다는 말에 어정쩡하게 알았다고 했습니다. 얼결에 대답하고서 자세한 내막도 알지 못하고 승낙한 듯해서 바로 전화했으나 신호만 가고 응답이 없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얼마 후에 책이 배달되었습니다. 포장을 뜯어보니 ‘안내 말씀’이라는 서간이 들어 있었습니다. 종사보감을 발행하여 보급하는 일을 소명으로 안다며 작금의 시대에 가문의 역사와 전통을 후손들에게 계승하여 일가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취지 설명과 함께 책 대금 20만 원씩을 송금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충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시조 김수로왕의 사적과 본관지의 연혁, 각종 유적지에 관련된 사진, 파명록(派命祿), 주요 세거지(世居地), 세계표(世系表) 등이 있고 씨족사의 개요와 주요 인물들이 전기가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일일이 읽어 보고 싶었지만, 목회 일과 달빛 시낭송회 행사를 앞두고 있어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족보를 만드는데 온 힘을 기울이셨습니다. 필자가 아주 어렸을 때 ‘대동보’란 족보를 만드셔서 친척들에게 나눠주는 걸 보았습니다. 가보처럼 간직해오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집안의 어르신인 당숙에게 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대여섯 살 어린 손자를 앉히시고 ‘우리는 김해김씨 안경공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필자는 한 가문의 조상과 역사를 아는 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상들의 업적을 기리고 가치관과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성경에도 족보가 나옵니다. 창세기는 천지 창조부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등 족장들의 역사를 기록한 거대한 족보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마태복음, 누가복음에서도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뿌리를 아는 것은 역사를 아는 일이며 정체성과 가치관을 세우는 일입니다. 필자는 한때는 타인의 성씨 내력도 흥미가 있어 중앙일보에서 1998년 발행한 ‘성씨의 고향’이란 ‘한국 성씨 대백과’ 책을 당시는 거금이었을 9만 원이나 주고 사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습니다. 핵가족, 일인가족, 정보화 시대, 인공지능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호주제가 폐지되고 부의 성만 따르던 전통도 모의 성도 따르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다문화 가정도 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조상들에 대한 애착이나 공경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화장 문화가 대세이니 앞으로는 부모님 산소도 없어질 듯하고 성묘조차도 사라질 것입니다. 보내온 족보 책을 볼 때마다 부담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전통을 중시하고 뜻이 있다고 하여 가승보(家乘譜)도 아닌 일반 족보 책을 자식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습니다. 필자 자신도 그 두꺼운 책을 곁에 두고 있을 형편도 못 됩니다. 아내는 방 무너진다고 야단입니다. 이젠 책을 둘 공간도 없습니다. 매일 쌓이는 게 책입니다. 몇 번 필요한 분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지만, 김해김씨 족보를 남에게 주기도 그렇고 더욱이 고물상에 넘기기도 부담스럽습니다. 남 주기도 그렇고, 버리기도 그렇고, 보관하기도 그렇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족보 책이 정말로 계륵 같은 존재였습니다. 족보 대금을 보내라는 독촉 문자가 계속 떠올라 심란했습니다. 의뢰하지도 않고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책을 보내 놓고 독촉하는 문자를 보는 순간, 책을 반송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습니다. 카톡에 보내온 전화번호에 반송한다는 문자를 보내고 우체국에 가서 택배로 보냈습니다. 족보를 사서 양반 행세하던 시대를 생각하면 참으로 세상 많이 변했습니다. 요새는 족보를 만들어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어쨌든, 좋은 뜻으로 보내준 책을 반송하고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어쩐지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애꿎게 시대를 탓해 봅니다./목사·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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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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