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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을 찾아서 –2-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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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5.05.2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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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배 본지 칼럼리스트

단종, 그리고 세조, 또 한 사람 엄흥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사후가 궁금했습니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사약을 받고 억울하게 죽었으나 200여 년이 지난 후 1698년 숙종 24년에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던 왕위가 복위되었습니다. 1967년부터 영월에서는 단종제를 시작하였으며 1990년부터는 단종문화제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후손들로 그 넋을 위로하고 그 억울함을 풀어주고 있었습니다.

 

한편 세조는 어떨까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그의 권력 찬탈을 옳게 보지 않습니다. 그가 이룩했던 여러 치적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안정이나 과거제도 개선 또는 불교 진흥 같은 치적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후세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오직 ‘세조’ 하면 어린 조카를 밀어내고 왕이 되었다는 비정한 숙부로만 기억될 뿐입니다. 역사는 냉정합니다. 조선 최대의 비극인 계유정란(癸酉靖亂)의 장본인으로만 기억합니다.

 

위선피화오소감심(爲善被禍 吾所甘心).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해도 달게 받겠다며 삼족을 멸한다는 지엄한 왕명을 거역하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르고 벼슬마저 버리고 숨어 지냈던 엄흥도. 역사는 이런 의로운 사람을 잊지 않았습니다. 단종하면 엄흥도가 떠오르고 그의 의로움을 후세는 기억합니다. 그는 숙종 11년(1695년)에 육신사에 배향되었으며 영조 대왕 때 공조참판에 추증되었습니다. 순조 33년(1833)에는 공조판서로 추증되었고 고종 13년에는 ‘충의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잠시 왔다가는 게 인생입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 했습니다. 단종, 세조, 그리고 엄흥도. 지금도 여전히 그 같은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역사는 말합니다. 어떤 이름으로 기록되고 싶은가?

 

영월 곳곳에는 단종의 자취들이 서려 있었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영월에서는 단종의 고혼과 충신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단종 문화제를 열고 있습니다. 올해 58회째라고 합니다. 장릉은 단종의 능입니다. 장릉을 찾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정순 왕후선발대회에 출전하는 여인들을 만났습니다. 이들과 잠시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25일 단종 문화제 때 선발대회를 연다고 했습니다.

 

정순왕후는 어떤 인물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녀는 단종 2년에 왕비가 되었습니다. 단종이 열두 살, 정순왕후는 열다섯 살이었습니다. 단종이 폐위되고 정순왕후도 폐서인이 되어 70여 년 동안 홀로 살다가 중종 8년, 노년에 복권되어 82세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영월에서는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왕후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정순왕후 선발대회’를 열어 그 정신을 기린다고 했습니다. 정순왕후가 환생하는 날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비운의 왕 단종은 겨우 16년(1441~1457)을 살다 갔습니다. 세조는 그보다 세 곱절 더 많은 51년(1417~1468)을 살았습니다. 억울하게 살다 간 단종은 비운의 땅 영월에서 대대로 그 영혼을 위로받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세조는 이 나라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불의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의리의 삶을 살다 간 엄흥도는 자손들이 복 받고 그 의로움으로 ‘위선피화 오소감심(爲先被禍 吾所甘心).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청령포에 가면 또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치 엑스트라 같은 사람, 바로 왕방연입니다. 그는 단종의 사약을 전하는 금부도사였습니다. 사약을 받들고 노산군으로 전락한 단종에게 나아갔으나 차마 사약을 전할 수 없어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그곳에서 심부름하던 사람이 대신 사약을 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나와 있던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라는 시조. 사약을 전하고 돌아가다 냇가에 앉아 지었다는 왕방연의 시조입니다. 

 

서강 앞 자갈밭 위에 앉아 잠시 배를 기다리는 동안 왕방연의 마음을 헤아려 봤습니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도 많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맹종했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저 엑스트라로 살다 보면 그렇습니다. ‘너도 그렇다’ 왕방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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